마지막 수정 날짜 : 2019/08/07

근현대 프랑스의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는, 흔히 사회 교과서나 세계사 교과서, 윤리사상 교과서 등에서 ‘현대 민주주의 사상의 기초를 쌓은 철학자’,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철학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의 저술 <<사회 계약론>>에서, 그는 ‘민주주의는 나쁜 정치 체제’라고 주장했으며, 큰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민주주의 비판자였다. 장 자크 루소가 말한 ‘민주주의’는, 고대 헬라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지적한, 아테네의 민주주의이다.  그러면서 루소는 고대 ‘로마 공화정’을 훌륭한 정치 체제로 주장하며, 그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법치 국가’를 지향하였다. 여기서는 지리한 철학사에 대해서는 크게 논하지 않겠으나, 루소가 그렇게나 민주주의를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결합되었으며 또 루소가 꿈꾼 ‘좋은 국가’의 형태를 많이 받아들이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루소가 현대 민주주의의 예견자, 설계자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와 고대 민주주의 국가의 차이를 따지자면, ‘시민권이 누구에게 있었나’ ‘노예제가 있었나’ 정도를 생각하겠지만, 좀 더 근원적인 차이를 찾자면 ‘주권자 의식’과 ‘통치의식’의 존재여부에서 기인한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단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일 뿐, 주권자로서 ‘국가를 통치’ 한다는 의식이 없었다. 가령 어떤 거대 마피아 집단의 두목이라면, 그는 그 소집단 내에서 거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를 ‘통치자’로 부를 수는 없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단지 ‘여럿이 모여 수싸움을 통해 권력을 획득하고, 승자가 권력을 휘두르는 시스템’이었지, 그들은 ‘국가의 주권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이 나라를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루소가 법치국가를 이상적인 형태로 보았다는 것과 연결시켜 보자면, 로마법은 현대 선진국가의 법률로 계승된 정교하고 당대 합리성의 극치이지만, 그리스법은 그런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당장 소크라테스가 구체적인 법조항 위반이 아니라 ‘불경죄와 선동’이라는, 불명료한 혐의에 의한 고발로 사형당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렇기 때문에 루소는 민주주의는 단지 ‘폭군이 여러 명인 체제’에 불과했고 그런 민주주의 체제는 나쁘다고 생각한 것이다.

비록 현대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와 너무나도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루소의 민주주의 비판을 적용시킬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의 주장은 ‘인터넷의 민주주의’ 그리고 이 글에서는 ‘위키에서의 민주주의’가 허상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데 더욱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위키에서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며, 억지로 시도한다고 해도 나쁜 결과만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인터넷 이용자에게는 어떤 사이트에 대한 ‘주권자 의식’/’통치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리그베다 위키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붕괴했을 때, 인터넷에서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나무위키’와 ‘리브레위키’로 몰려와 ‘대안 위키’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리그베다 위키의 문제점을 ‘독재체제’라고 생각했고 대안 위키는 ‘민주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나무위키와 리브레위키 모두 일정한 ‘민주주의’ 를 꿈꾸었고, 선거제, 모든 유저가 직접 규정을 만들 권한을 주고 운영자는 이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나무위키의 경우 초창기의 규정 입법자들은 (초점을 잘못 잡았다는 문제는 감안하고서라도) 위키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는 안목, 위키가 어떠한 형태를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권자 의식’및 ‘통치 의식'(그들이 실제로 전권을 쥐고 통치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위키의 ‘틀’인 규정을 만들 권한을 ‘당장 1초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까지 주었을 때, 그것은 결과적으로 파국에 이르르게 되었다. 초창기 유저들은 그나마 어떤 안목이 있었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운 새로운 유저들은 단지 근시안적으로 ‘어떠한 편집 형태가 보기 싫다. 그러니 규정으로 없애자!’, ‘어떠한 분쟁이 보기 싫다, 그래서 규정으로 없애자!’ 식으로 규정을 누더기질하고, 끝내 나무위키를 비잔티움식 관료제 꼴을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나무위키는 형식적으로나마 얻어낸 ‘민주주의’마저도 현재는 없어져버린 채, Umanle라는 신원불상자가 모든 전권을 쥔 독재체제에 들어가고 말았다. 민주주의는 주권자가 ‘다수의 시민’에게 있는 체제를 말하고, 독재정은 주권자가 ‘단일한 존재’에게 있는 체제이다. 이제 나무위키의 유일한 주권자는 Umanle 뿐인 것이다.

리브레 위키는 여전히 형식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리브레 민주주의의 탁월함’을 역설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리브레 위키는 현재 준-정전 상태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 사람 노 스트레스’, 단지 사람이 적어서 분쟁이 없는 것에 불과한 것 뿐이다.

국가가 형성되는 이유에 대해 사회계약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생명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재산은 그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필수요소이다. 그러나 혼자서는 생명과 재산을 효율적으로 보호할 수 없기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일정한 ‘계약’을 맺고, 공동으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체제를 만든 것이 국가이다. 여기서는 주권자 의식과 통치의식이 생겨날 여지가 충분하다. 왜냐하면 국가라는 것은 인간의 생명과 재산이 걸려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키를 포함한 인터넷 사이트는 생명도, 재산도 걸려 있지 않다. 아니, 국가를 통치하는 것에 비하면 비교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단지 ‘취미와 유희’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위키에서 민주주의를 하게 된다면, 제대로 된 통치의식과 주권자 의식이 없이, 그냥 ‘놀러 온 사람들’, 후대의 철학자 니체의 말을 빌자면 ‘민주주의 코스프레하는 무리짐승’들의 놀이터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위키에 그렇게 목매일 것도 없고, 망했다고 생각하면 그냥 ‘좆무위키’ 소리를 하면서 다른 ‘놀이터’에 가서 낄낄대면 그만인 것들이다. 그들에게 무슨 민주주의를 바란다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 사이트의 대다수는 ‘독재체제’로 이루어지며, 오히려 인터넷에서는 ‘독재체제’가 더욱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권자 의식과 통치의식 비슷한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이트 설립자와 운영자’ 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운영자들 대다수는 사이트를 통해서 돈벌이를 시도하려고 하고, 적어도 ‘자신의 수입’이 걸려있기 때문에 그나마 ‘통치 의식’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위키라고 할수있는 위키백과(위키피디아)만 보더라도 절대 민주체제가 아니다. 위키피디아의 주권자는 ‘위키미디어 재단’이라는 법인이다. 이 법인 내부는 철저한 회사 체제로 돌아간다(적어도 회사 돌아가는 모습에 더욱 가깝다). 위키백과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내부 정치’는 단지 그 끝머리에서 일어나는 약간의 ‘민주주의 놀음’에 불과하다. 사무관이나 검사관, 관리자 따위는 형식상 ‘민주주의’적으로 생각되지만 그들은 위키미디어 재단 기준으로는 ‘말단의 말단’에 약간의 자율성을 준 것에 불과하다. 가령 이 운영자들이 ‘위키백과의 NPOV 정책’을 폐기할 수 있을까? 구 나무위키나 리브레 위키라면 가능하지만, 위키백과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위키백과의 주권자가 아니며, 위키백과의 유일한 주권자인 ‘위키미디어 재단’은 그런 정책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현실 정치라면 몰라도, 인터넷 사이트와 위키에서는 독재체제가 민주체제보다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이와 같이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인터넷의 독재자는 무조건 민주주의보다 낫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통치 의식’과 ‘주권자 의식’을 기대할 수 있는 그나마 유일한 대상이 ‘사이트 운영자’라고 했을 뿐, 그것이 자동적으로 ‘사이트 운영자는 무조건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여러가지 오판, 미숙성 등에 의해서 자기의 사이트를 말아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