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날짜 : 2019/08/07

필자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나무위키를 욕하는 글이 많이 보인다. 나무위키, 욕할 거 참 많은데 굳이 병신같이 욕하는 애들은 지가 뭔 말을 하는 지는 알려나?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eversestorm&logNo=221322511198

이 글을 보면 나무위키를 움베르트 에코가 설명한 파시즘의 전조에 빗대어서 비난한 것을 볼 수 있다. 근데 이 글 쓴 사람은 파시즘이 뭔지, 정확하게는 인용한 글을 제대로 읽고서는 한 소리일까?


1. 원형 파시즘의 첫번째 특징은 <전통의 숭배>입니다. 전통주의는 파시즘보다 더 오래되었지요. 그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가톨릭적 반혁명 사상의 전형이었을 뿐만 아니라, 후기 헬레니즘 시대에 고전적 그리스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탄생하였습니다.⇒나무위키는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이후 반리그베다 사상의 일환으로 취소선·볼드체·저명성 없는 문서 등을 위키 내에서 모두 축출했으며, 위키백과의 출처 제일주의에 대한 반발로서도 탄생하였습니다.

원문이 인용한 글을 풀이하자면 원형 파시즘의 특징 중 하나인 전통주의는 이후 나타난 후기 헬레니즘 시대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로 출현하였다는 뜻이다. 합리주의적 특성에 반발하여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한다는 의미이지만, 원문은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 ‘나무위키는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이후 반리그베다 사상의 일환으로’

여기까지는 현실과 같다. 나무위키는 실제로 반 리그베다 사상의 일환으로 초창기 ~ 민선 운영진 체제 초반까지 리그베다 위키의 소수운영방침, 비합리적인 토론 문화에 반발하여 민주적인 운영체제를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전통주의와 무슨 관계일까? 리그베다 위키는 합리적이고 나무위키는 합리적인 운영에 반발했다는 의미인가? 이런 의미라면 현실과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것이 된다. 초창기 나무위키는 인터넷 민주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 ‘취소선·볼드체·저명성 없는 문서 등을 위키 내에서 모두 축출했으며’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나무위키는 리그베다 위키의 문서를 계승한 만큼 리그베다 위키의 요소를 ‘배격’하는 것이 아닌 ‘비판적 계승’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운영되었고 초창기 유저층도 리그베다 위키와 다르지 않다. 이들은 리그베다 위키의 서술 방식을 그대로 따라갔고 취소선, 볼드체 사용을 이어나갔다. 문서의 저명성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논의가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리그베다 위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현재의 탈 엔하위키적인 요소는 이후 검색, 디시인사이드, 트위터 등지에서 유입된 사용자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지 반 리그베다 사상과는 전혀 관계없고 원형 파시즘의 특징의 ‘전통주의’ 하고는 더더욱 관계없는 주제이다.

  • 위키백과의 출처 제일주의에 대한 반발로서도 탄생하였습니다.

나무위키는 ‘엔하계 위키’이며 위키백과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위키백과는 ‘출처 제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도 않으며 위키백과에 서술된 내용에 출처를 강제하는 것은 백과사전으로서 ‘확인된 내용’ 만을 작성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정책일 뿐이다. 나무위키는 위키백과의 출처 강제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지도 않으며(그냥 자기들 위키 쓰면 그만인데 왜?) 그렇다고 해서 나무위키가 출처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면 토론 과정에서 근거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무위키가 생겨나게 된 ‘리그베다 위키의 대혼란’이 발생한 이유가 리그베다위키의 한 이용자가 영어 위키백과 ‘네버랜드’ 문서를 무단 번역한 것(엄밀히 말하여 위키백과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라는 자유저작물 라이선스를 사용하므로 원저자에게 따로 허가 및 대가 지불 없이 개작-재배포가 가능하지만, 리그베다 위키가 채택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조항과 맞지 않아서 결과적으로는 무단 번역이 된 것이다) 때문에 나무위키는 오히려 타 위키 등을 무단 복붙하는 행위는 매우 민감하다. umanle 체제가 성립된 이후에도 타 위키를 복붙한 것이 명백하면 즉시 삭제된다. 물론 소위 말하는 ‘오타쿠 위키’의 성향이 아예 죽지는 않아서 애니 스샷, 게임 스샷 등을 부분적으로 임의 업로드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사이트와 다를 바 없고 리브레 위키도 마찬가지인 사항이다.

무엇이 전통의 숭배란 말인가?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포장해서 악의적으로 유도하는 것일 뿐이다.


2. 전통주의는 <현대성의 거부>를 함축합니다. 파시스트나 나치 모두 테크놀로지를 숭상하였습니다. 반면 전통주의 사상가들은 대게 테크놀로지를 전통적인 정신가치의 부정으로 간주하여 거부하지요.

⇒나무위키는 Umanle의 반대자의 다중 계정몰이·편집 요청 등 미디어위키(한국어 위키백과)에는 없는 기능을 추가하면서 일종의 테크놀로지를 숭상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인용문을 중간에 잘라서 적었기 때문에 원문의 의미가 왜곡되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전통주의는 <현대성의 거부>를 함축합니다. 파시스트나 나치 모두 테크놀로지를 숭상하였습니다. 반면 전통주의 사상가들은 대게 테크놀로지를 전통적인 정신가치의 부정으로 간주하여 거부하지요. 어쨌든 비록 나치즘이 자신의 산업적 성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을지라도, 현대성에 대한 그들의 찬양은 <피와 땅Blut und Boden>에 기반을 둔 이데올로기의 피상적인 양상에 불과하였습니다.
현대 세계의 거부는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에 대한 비난으로 위장되어 있지만, 주로 1789년(또는 분명히 1776년)의 정신의 거부와 괸련되어 있었습니다. 계몽주의 그리고 이성의 시대는 근대적 퇴락의 시초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형 파시즘은 <비합리주의>로 정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용문은 비록 파시즘이 테크놀로지를 숭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피상적인 양상에 불과하며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에 대한 비난으로 포장된 계몽주의(합리주의)에 대한 거부가 본질이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원형 파시즘을 비합리주의로 정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 나무위키는 Umanle의 반대자의 다중 계정몰이·편집 요청 등 미디어위키(한국어 위키백과)에는 없는 기능을 추가하면서

미디어위키가 위키엔진의 표준이고 미디어위키에 없는 기능은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Umanle에 대한 반대자의 다중계정 몰이’가 위키엔진의 기능인가? 위키엔진마다 기능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는 위키엔진 사용자와 개발자의 필요에 기반한 것이다. 편집 요청도 사용자(Umanle)의 필요에 따라 개발된 기능일 뿐이다.  완전 회원제 위키와 완전 개방형 위키 사이의 스펙트럼 중에서 완전 회원제 위키 쪽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의 변화라는 것이다.

  • 일종의 테크놀로지를 숭상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위와 같은 행보가 ‘테크놀로지의 대한 숭상 ‘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단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추가하였을 것일 뿐더러 기본적으로 개발자라면 최신 기술을 적용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기능 한두개를 추가한다고 해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숭상’ 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더말할 필요 없이 이것이 원형 파시즘에 대한 요소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다. 글쓴이가 움베르트 에코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음만 나타낼 뿐이다.


3. 비합리주의는 또한 <행동을 위한 행동>의 찬양에도 의존합니다. 행동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따라서 어떠한 성찰도 없이 또한 성찰 이전에 실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요.

⇒나무위키에서는 행동을 토론이란 형태로 실현하고 있으며, 행동을 중단하면, 다른 회원이 그 사안을 멋대로 정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토론자들은 규정 및 합의사항을 관철시킬 때 어떠한 성찰도 없이 혹은 성찰 이전에 그 행동을 실행에 옮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용문을 풀이하자면 비합리주의는 성찰보다는 행동에 집중하며, 생각한다는 문화와 지식인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 나무위키에서는 행동을 토론이란 형태로 실현하고 있으며, 행동을 중단하면, 다른 회원이 그 사안을 멋대로 정할 우려가 있습니다.

인용문에서 언급한 ‘행동’을 이렇게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인용문에서의 행동은 생각-행동 두 가지 중 행동에 더 무게를 둔다는 의미이지 끊임없이 ‘행동’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굳이 비유하자면 토론 과정은 ‘생각’에 더 무게를 두는 쪽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다른 회원이 그 사안을 멋대로 정할 우려가 있다’ 는 나무위키 뿐만이 아니라 어떤 공동체(위키로만 한정한다고 해도!)라도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다. 본인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특정인이 독재하고 있어 특정인이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진행되지 않는 특별한 경우 외에) 언제든지 관심 있는 다른 사람이 일을 진행시키는 게 민주주의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

  • 그러므로 토론자들은 규정 및 합의사항을 관철시킬 때 어떠한 성찰도 없이 혹은 성찰 이전에 그 행동을 실행에 옮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글쓴이는 여기서 토론과 결부시킨다. 글쓴이는 ‘나무위키의 사용자들은 생각(공동체라면 사전 판단) 없이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적용(내지는 강요)한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특수권한을 들고 있지 않은 사용자인 이상 다른 사람의 동의 없이 무언가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4. 그 어떠한 형태의 혼합주의도 비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비판 정신은 구별 작업을 하며, 구별한다는 것은 현대성의 표시이지요. 현대 문화에서 과학의 공동체는 불일치를 지식의 진보를 위한 도구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원형 파시즘에서 <불일치는 바로 배반입니다.>

⇒그 혼합주의가 바로 필자가 주장한 것입니다. 취소선·볼드체 등은 금지하기보다는 적당히 써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Geoteve는 ‘나무위키와 위키백과는 다르다’는 말로서 이러한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영어 원문을 소개하고 시작한다.

4. Disagreement is treason. “The critical spirit makes distinctions, and to distinguish is a sign of modernism. In modern culture the scientific community praises disagreement as a way to improve knowledge.”

영어 원문의 의미는 현대 문화에서 과학 집단은 부동의를 지식의 진보를 위한 도구로 이해하지만 불일치를 구분하는 것은 모더니즘의 신호이며 이것은 부동의를 반역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파시즘의 요소에는 ‘획일화’가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 그 혼합주의가 바로 필자가 주장한 것입니다. 취소선·볼드체 등은 금지하기보다는 적당히 써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Geoteve는 ‘나무위키와 위키백과는 다르다’는 말로서 이러한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나무위키에서 이루어지는 논쟁에서 주요한 것 중 하나는 리그베다 위키의 문체와 대중화된 문체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Geoteve는 대중화된 문체를 선호하는 입장이고, 글쓴이는 리그베다 위키식 문체를 선호하는 입장이기에 논쟁에 서로 참여하였다. 기본적으로 위키에서의 다양성은 위키의 정체성(편집 정책 등으로 대표된다.) 안에서의 다양성이고, 이러한 편집 정책은 어떠한 스펙트럼 안에서 위치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간다고 할지라도(원래부터 다양한 편집 원칙을 용인하는 위키가 아닌 이상) 이를 획일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5. 그 외에도 불일치는 다양성의 표시입니다. 원형 파시즘은 천성적인 <차이에 대한 두려움>을 과장하고 이용함으로써 일치를 찾고 증대시키려고 하지요. 파시즘 운동 또는 파시즘을 예고하는 운동의 첫 번째 호소는 침입자들에 대한 반대입니다. 그러므로 원형 파시즘은 그 정의상 인종 차별적입니다.

⇒나무위키는 리그베다 위키의 데이터베이스를 포크한 탓에 리그베다 위키 특유의 취소선·볼드체가 잔존해 있었습니다. 이것은 위키백과와 큰 차이점이며, 나뮈병들, 특히 리그베다 위키 편집 경험이 없는 나뮈병들은 어떻게든 어거지로 위키백과와 서술 문화를 일치시키려고 발악하였습니다.

원문의 의미는 파시즘은 ‘다름’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다름’을 가지고 있는 ‘침입자’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원형 파시즘은 인종차별주의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 나무위키는 리그베다 위키의 데이터베이스를 포크한 탓에 리그베다 위키 특유의 취소선·볼드체가 잔존해 있었습니다. 이것은 위키백과와 큰 차이점이며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리그베다 위키의 문체는 위키백과와 큰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이를 포크한 나무위키도 특정한 정책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그러한 서술 양식을 따라가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 나뮈병들, 특히 리그베다 위키 편집 경험이 없는 나뮈병들은 어떻게든 어거지로 위키백과와 서술 문화를 일치시키려고 발악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나무위키 내부에서도 위키백과의 서술 양식(확인된 사실만 서술, 근거자료 강제 등)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러한 서술 양식을 적용하는 위키백과로 가면 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고, 나무위키 내부에서 리그베다 위키의 문체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쪽은 오히려 위키백과 유입이 아닌 검색이나 디시인사이드 등지에서 유입된 사용자들이었다. 위키백과를 이상향으로 삼아서 나무위키를 위키백과와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위키백과화’라는 단어는 유연한 서술 문체에서 이러한 요소를 제거했을 시 ‘위키백과와 다른 게 뭐냐’라는 의미에서 생긴 단어일 뿐이다. 애초에 인터넷의 드립성 유행어는 대부분 학술적인 듯한 엄밀성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런 면에서 ‘위키백과화’가 실존하고 나무위키가 위키백과화 된다고 해서, 정작 나무위키는 ‘위키백과화’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위키백과화(진짜로 위키백과와 동일한 정체성을 추구하고 그 특성도 모방한다고 하면)된 위키라면 그곳은 출처 없는 서술의 무차별적 제거, 모든 사견적 서술의 금지 등의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위 ‘위키백과화’는 이런 정책을 전혀 수반하지 않는다. 즉 위키백과화와 실제 위키백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또한 ‘나뮈병’은 ‘나무위키의 설립자(운영사)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친위 세력과 같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지 논쟁에서 리그베다 위키의 서술 문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을 이렇게 일컫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원저자 H모는 ‘청위병’에 빗대어 ‘나뮈병’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청위병’은 ‘청동의 호위병’ 이라는 뜻으로 리그베다 위키 대혼란 당시 청동의 정책과 약관을 옹호하고 당시 이곳저곳에서 몰려온 ‘죽창러’들에게 맞선 이들로 바로 그 ‘죽창러’와 외부 여론(주로 디시인사이드의 특정 갤러리)에 의해 ‘청위병’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가 지나가자 그 말뜻이 약간 변하여 ‘리그베다 위키의 죽돌이와 청동의 친구들’ 마저도 청위병이라 부르는 이들이 생겨났다. 나무위키의 탄생과 궤도 안정화가 일어나자 리그베다는 거리낌없이 악마화 가능한 대상으로 전락했고 그걸 굳이 지적할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H모의 ‘나뮈병’ 용법 또한 이와 같은 변질된 청위병 사용에서 유래했다 볼 수 있으며, 단지 ‘나무위키에 대해 가진 악감정을 아무렇게나 쏟아놓는’ 용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H모가 사용하는 ‘파시즘’이라는 말 또한 일부 학자들로부터 딱 저런 취급을 받는다.


6. 원형 파시즘은 개인적 또는 사회적인 좌절에서 분출되지요. 이것은 무엇 때문에 역사적 파시즘들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가 <좌절된 중간 계층들에 대한 호소>였는가 설명해 줍니다.

⇒여기에서 설명하는 좌절된 중간 계층을 위키위키에 비유하면, 위키백과에서 활동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나무위키로 온 사람들이 해당될 것입니다. 추종 대상은 없지만, 그 대신 규정 개정이 자유롭다는 점을 이용하여 점점 더 목소리를 높힌 것이었죠.

원문은 파시즘이 주목하는 계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파시즘은 개인적 또는 사회적인 좌절을 겪은 중간 계층에게 호소하여 그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중간 계층에서는 원문에서는 “a class suffering from an economic crisis or feelings of political humiliation, and frightened by the pressure of lower social groups.”, 경제적인 위기나 정치적 굴욕, 또는 하위 계층으로부터의 압력을 받는 계층이라는 것이다.

  • 여기에서 설명하는 좌절된 중간 계층을 위키위키에 비유하면, 위키백과에서 활동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나무위키로 온 사람들이 해당될 것입니다.

위키백과에서 나무위키로 이동한 사람들을 ‘중간 계층’에 비유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나무위키는 계층 사회가 아니고(계층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경우라면 리그베다위키 위키방 정도이며, 이도 명시적으로 구분된 계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위키백과에서 온 사람은 그 특성상 극히 수가 적을 뿐더러 이들을 ‘중간 계층’에 비유하려면 ‘정치적 굴욕’이나 ‘하위 계층으로부터의 압력’ 둘 중 하나라도 만족되어야 하는데(위키에서 경제적 위기는 없으니) 이들은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

  • 추종 대상은 없지만, 그 대신 규정 개정이 자유롭다는 점을 이용하여 점점 더 목소리를 높힌 것이었죠.

우선 위키백과도 규정 개정이 자유로울 뿐더러(정책 사랑방에 주제를 개설하거나 해당 문서에 토론을 걸면 된다.) 특정한 대상이 위키백과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런 점을 어필했다는 근거도 없다.


7. 어떠한 사회적 정체성도 없는 사람들에게 원형 파시즘은, 그들의 유일한 특권은 모두에게 가장 공통적인 것, 즉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위키위키의 경우 위키위키=위키백과라는 고정관념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가 가장 유명하니까 위키백과식 서술을 나무위키에 (어거지로) 도입하려고 하는 것이죠.

원문을 더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7. 어떠한 사회적 정체성도 없는 사람들에게 원형 파시즘은, 그들의 유일한 특권은 모두에게 가장 공통적인 것, 즉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국가주의>의 기원이지요. 또한 국가에 정체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적입니다. 따라서 원형 파시즘 심리의 저변에는, 가능하다면 국제적인 <음모의 강박 관념>이 있습니다. 파시즘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포위되어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음모를 출현시키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외국인 혐오증>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음모는 내부에서도 역시 나와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대개 가장 멋진 표적이 되지요.

원형 파시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나라에 태어난 것’이 특권임을 전파하며 이를 위해 ‘국가에 정체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적’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 외부의 적을 끊임없이 창조한다는 내용이다.

  • 위키위키의 경우 위키위키=위키백과라는 고정관념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가 가장 유명하니까 위키백과식 서술을 나무위키에 (어거지로) 도입하려고 하는 것이죠.

위키위키=위키백과라는 생각은 위키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존한다. 하지만 위키백과와 다른 서술 양식을 가진 다른 위키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뉴비’로 취급해서 자신의 위키의 서술 양식에 대해 안내하거나 제재한다. 나무위키도 이와 다르지 않다. 또한 원문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원문은 원형 파시즘이 국가주의를 추구하기 위해서 내, 외부의 적을 강조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8. 파시즘 추종자들은 적의 힘과 과시된 부에 의해 모욕감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영국 사람들은 <다섯 끼니를 식사하는 국민>이라고, 그러니까 가난하지만 근검한 이탈리아 사람들보다 훨씬 자주 먹는다고 배웠습니다.

⇒위키위키의 경우 리그베다 위키의 취소선·볼드체, 한국어 위키백과의 출처 필요, 그리고 디시위키의 ㄴ 및 유머성 서술 등이 해당될 것입니다. 나무위키 그루터기에서 해당 위키를 검색어로 입력하면 이들이 이 위키들에 대해 얼마나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는지 나올 겁니다.

원문은 위의 7번을 위해서 ‘적의 이점’을 단점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원문의 예를 들면, 영국은 ‘돈이 많아서’ 가 아니라 ‘게으른 돼지’라서 다섯 끼니를 먹는다고 선전하는 식이다.

  • 위키위키의 경우 리그베다 위키의 취소선·볼드체, 한국어 위키백과의 출처 필요, 그리고 디시위키의 ㄴ 및 유머성 서술 등이 해당될 것입니다. 나무위키 그루터기에서 해당 위키를 검색어로 입력하면 이들이 이 위키들에 대해 얼마나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는지 나올 겁니다.

대채적으로 위키를 다루는 위키는 다른 위키에 대한 비판 문서가 존재한다. 다른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자신의 커뮤니티와 비교해서 타 커뮤니티의 단점을 적는 것은 일반적인 위키 커뮤니티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는 나무위키에만 특정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닐 뿐더러 리그베다 위키의 ‘취소선, 볼드체’, 한국어 위키백과의 ‘출처 필요’, 디시위키의 ‘ㄴ 및 유머성 서술’을 일반적으로 ‘다른 위키와의 경쟁했을때 우위에 있는 점’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볼 때 글쓴이는 원문을 잘못 인용했다고 할 수 있다.


9. 원형 파시즘에는 <삶을 위한 투쟁>은 없고, 오히려 <투쟁을 위한 삶>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화주의는 적과의 결탁>입니다. <삶은 영원한 전쟁>이기 때문에 평화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말이지요.

⇒여기에서 투쟁을 토론으로 치환하면 나무위키의 현실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문서 내용이 불시에 뒤바뀌어버리는 위키 특성상 서술 시점이 고정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이를 지키기 위해 직접 토론에 나서야 하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서의 질을 높이는 것은 ‘적의 결탁’으로 치부되어 무시됩니다.

원문은 파시즘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는 투쟁’을 선호하고 평화주의를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 여기에서 투쟁을 토론으로 치환하면 나무위키의 현실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문서 내용이 불시에 뒤바뀌어버리는 위키 특성상 서술 시점이 고정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이를 지키기 위해 직접 토론에 나서야 하죠.

일반적인 위키에서 토론은 ‘문서를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된다. 또한 지속적으로 서술이 변경되는 것도 일반적인 위키의 특징이고,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서술을 고수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문서 사유화’라고 지칭되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 점을 감안했을 때 토론을 ‘끝없는 투쟁’에 비유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서의 질을 높이는 것은 ‘적의 결탁’으로 치부되어 무시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반적인 위키에서 토론은 문서를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토론은 승패가 아닌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이러한 점에서 ‘토론’은 적절하지 않고 ‘토의’란 단어를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영어 위키에서는 한국어 위키의 ‘토론’을 ‘Talk’로 표현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나무위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실제로 나무위키의 토론을 보면 특정한 인물의 주장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지는 것보다는 여러 주장 사이의 절충점을 찾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10. 엘리트주의는 근본적으로 귀족적이기 때문에 모든 반동적 이데올로기의 전형적 특징입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모든 귀족적이고 군사적인 엘리트주의는 <약한 자들에 대한 경멸>을 함축하였지요.원형 파시즘은 <대중적 엘리트주의>를 설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시민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국민에 속하며, 당원들은 가장 뛰어난 시민들이며, 모든 시민은 당원이 될 수 있습니다(또는 되어야 합니다).

⇒이 엘리트주의라는 것이 바로 ‘한국어 위키백과’입니다. 나무위키는 출처에 대한 접근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을 끌어모아 한국어 위키백과의 출처 필요에 대한 경멸을 함축시켰습니다.

원문은 엘리트주의와 대중적 사상(‘모든 시민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국민에 속하며, 당원들은 가장 뛰어난 시민들이며, 모든 시민은 당원이 될 수 있다’)과의 양립을 위해서 ‘대중은 허약하기 때문에 지배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선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 이 엘리트주의라는 것이 바로 ‘한국어 위키백과’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가 엘리트주의’ 인지, ‘나무위키에 유입된 한국어 위키백과 출신의 사용자들’이 엘리트주의인지도 불명확할 뿐더러 근거가 없는 소리이다.

  • 나무위키는 출처에 대한 접근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을 끌어모아 한국어 위키백과의 출처 필요에 대한 경멸을 함축시켰습니다.

나무위키가 쉬운 서술 양식으로 사용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어 위키백과의 출처 필요에 대한 경멸을 함축’이 무슨 의미인지도 설명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한국어 위키백과가 서술 내용에 대한 출처를 요구하는 것은 위키 정책이지 다른 위키에서 일반적으로 ‘경멸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 또한 원문의 의미와도 아무 상관이 없는 주장이다.


11. 이러한 전망에서 보면 <각자는 영웅이 되기 위해 교육받습니다>. 모든 신화에서 <영웅>은 특이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원형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에서 영웅주의는 일상적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영웅주의는 나무위키를 운영하고 있는 Umanle일 것입니다. 사실 Umanle는 설립한 사람이 아니라 줏어먹은 사람인데, 운영 방해자를 영구차단시키는 형태로 영웅주의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죠.

원문은 각자에게 영웅주의를 전파해서 영웅적 삶을 강요하고, 죽음을 유도한다는 내용이다. 원문에서는 이를 ‘죽음 숭배’로 표현하였다.

  • 여기에서 말하는 영웅주의는 나무위키를 운영하고 있는 Umanle일 것입니다. 사실 Umanle는 설립한 사람이 아니라 줏어먹은 사람인데, 운영 방해자를 영구차단시키는 형태로 영웅주의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죠.

이 주장에서 ‘Umanle는 설립한 사람이 아니라 줏어먹은 사람’ 외에는 전부 타당하지 않다. 왜 Umanle가 운영 방해자를 영구 차단시키는 행위가 영웅주의와 결부되어 있는지 근거도 없을 뿐더러 원문에 표현된 영웅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구차단을 죽음으로 비유하면 오히려 Umanle에게 대항하는 행위가 영웅적인 행위가 되어 버린다!


12. 영원한 전쟁이나 영웅주의는 모두 하기 힘든 게임이기 때문에, 원형 파시즘은 자신의 힘의 의지를 성(性) 문제로 전이시킵니다. 이것이 <남성주의>(여성들에 대한 경멸 그리고 순결에서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비순응적 성 습관들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비난을 포함하는)의 기원입니다.

⇒나무위키에서 발생한 파시즘은 자신의 힘의 의지를 페미니스트에게 돌려 성(性) 문제로 전이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훗날 워마드의 설립 계기가 되었으며, 심지어 혜화역에서 여성들이 몰카 반대 시위에 참여하여 뉴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제로 번지는 등 한국 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원문은 ‘영원한 전쟁’이나 ‘영웅주의’가 일상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목표이기 때문에 대신 성적인 요소(남성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 나무위키에서 발생한 파시즘은 자신의 힘의 의지를 페미니스트에게 돌려 성(性) 문제로 전이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무위키와 페미니스트와의 갈등은 ‘나무위키가 힘의 의지를 표현’했기 때문이 아니라 페미니스트들이 나무위키의 관련 문서를 반달하거나 토론 과정에서 내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고, 위키 측에서 이들을 차단하고 공격한 것에서 시작한 것이다.

  • 그리고 이 문제는 훗날 워마드의 설립 계기가 되었으며, 심지어 혜화역에서 여성들이 몰카 반대 시위에 참여하여 뉴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제로 번지는 등 한국 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워마드의 설립과 나무위키는 일절 관련이 없다. 워마드는 메갈리아의 운영진과 유저들과의 갈등 과정에서 생긴 것이지 나무위키와의 갈등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다. 여성시대와의 갈등과 메갈리아4와 연관된 클로저스 성우 논란에는 나무위키가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워마드의 설립에 한해서는 나무위키는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여성시대 사건은 당시에도 나무위키 외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무위키가 주도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도 없다. 또한 나무위키의 몰래카메라에 대한 서술은 부정적이여서 이에 대해 한국 사회에 악영향을 끼쳤다고도 하기 어렵다. 또한 원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주장이다. 글쓴이는 원문의 의미를 알기나 하고 이 글을 쓴 것일까?


13. 원형 파시즘은 <질적인 민중주의> 위에 기초합니다.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개인적 권리를 향유하지만, 시민들 전체는 단지 양적인 관점에서만 정치적 충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다수의 결정을 따르지요). 그런데 원형 파시즘은 개인 그 자체로서의 개인들은 권리를 갖지 않으며, <민중>은 하나의 질(質)로서, <공통 의지>를 표현하는 단일한 실체로 이해됩니다. 인간 존재의 어떠한 양(量)도 하나의 공통 의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지도자는 자기가 그들의 해석자라고 주장합니다.

⇒나무위키에서는 토론에서 다수결을 무시하고 만장일치제를 채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 합의를 하려면 특정한 가치에 대한 ‘공통 의지’를 표출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Umanle는 이러한 나무위키의 토론 풍토에 결론 도출이란 개념을 얹어 나뮈병들의 의견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원문은 파시즘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지만, 지도자의 독재를 포장한 것일 뿐이며 시민 개개인의 정치적 의견은 무시되고.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민주주의적 도구(의회와 같은)를 폄하한다는 내용이다.

  • 나무위키에서는 토론에서 다수결을 무시하고 만장일치제를 채택했습니다.

위키에서 토론의 결론을 낼 수 있는 수단 중 다수결이 절대적으로 우수한 것도 아니며, 그저 위키에서 논쟁을 해결하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예를 들어 위키백과리브레 위키도 다수결을 토론의 결론을 도출하는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다.

  • 그렇기 때문에 토론 합의를 하려면 특정한 가치에 대한 ‘공통 의지’를 표출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토론은 기본적으로 참여자들이 합의를 해야 종료된다. 그리고 토론은 특정 사안에 대한 합의이지 토론자들이 ‘특정한 가치에 대한 공통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토론 종결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 그리고 Umanle는 이러한 나무위키의 토론 풍토에 결론 도출이란 개념을 얹어 나뮈병들의 의견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나무위키 규정에서의 ‘토론의 결론 도출’은 토론에서 합의되지 않을 경우 무한대로 길어지는 문제(이를 녹음기라 한다)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 중재자가 토론에서 합리적인 주장을 ‘선택’함으로서 토론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Umanle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나무위키 유저들이 직접 만든 규정에 포함된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원문에서의 ‘지도자의 독재를 합리화’하는 파시즘의 행동과는 전혀 관계 없는 예시만 들고 있다.


14. <원형 파시즘은 “새로운 언어”를 말합니다>. <새로운 언어>는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말한 잉속Ingsoc, 즉 영국 사회주의의 공식 언어로 고안해 낸 것입니다. 하지만 원형 파시즘의 요소들은 다양한 형태의 독재에 공통적입니다.나치즘 또는 파시즘의 학교 교과서들은 모두 빈약한 어휘와 초보적인 통사를 토대로 하였는데, 바로 복잡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위한 도구들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이었지요.

⇒나무위키에서는 사측 계정이 결론 도출·다중 계정 검사·차단을 집행할 시 이에 대한 원인을 발설하지 않는,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시스템을 고안하였습니다. 또한, 나무위키는 연령층의 특성상 어휘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기에 한국어 위키백과에 비해 빈약한 어휘와 초보적인 통사로 서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서 내용이 설사 거짓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원문은 원형 파시즘이 시민들의 사고를 제한함으로서 우민화하여 권력에 대한 도전을 막는다는 내용이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를 통해 발현되며 언어를 제한하면 사고의 범위도 제한될 것이라는 생각 하에서 나온 것이다.

  • 나무위키에서는 사측 계정이 결론 도출·다중 계정 검사·차단을 집행할 시 이에 대한 원인을 발설하지 않는,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시스템을 고안하였습니다.

운영행위(위의 결론 도출, 다중 계정 검사, 차단을 통칭)를 하는 것에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일반적인 커뮤니티 운영에서 권장되는 것이다. 하지만 커뮤니티의 특성 상 이를 적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서 글쓴이의 블로그는 차단 시마다 이유를 적어서 블로그에 올리거나 메일로 발송하는가? 네이버 까페 등지에서 활동정지를 먹일 때 이유를 일일히 설명하는가? 이는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시스템’은 아닌 것이다. 사측의 운영행위의 근거가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판하면 되지 이를 다른 커뮤니티에 비교해서 주장의 신빙성을 저하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 또한, 나무위키는 연령층의 특성상 어휘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기에 한국어 위키백과에 비해 빈약한 어휘와 초보적인 통사로 서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서 내용이 설사 거짓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엔하계 위키의 ‘유연한 서술 방식’은 위키백과로 대표되는 ‘엄격한 서술 방식’과 비교해서 접근성 향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는 위키의 정체성이 ‘백과사전’이 아닌 것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어휘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서 빈약한 어휘와 초보적인 통사로 서술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위키의 정체성이 ‘쉽게 설명한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쉽게 설명한다고 해서 문서 내용을 거짓말로 적어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존재할 수 없다. (비록 어휘를 제한함으로서 문서가 설명하는 대상을 정확하지 않게 설명하는 한계는 존재할지라도) 그리고 ‘다양한 어휘와 전문용어’를 활용해서 위키 문서를 서술한다면 우선 가장 큰 문제에 마주할 것이다. 문서 내용을 읽을 수 없어서 안 읽는 현상이다!

그리고 위의 내용이 원문의 ‘복잡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위한 도구들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과는 무슨 상관인가?


여기에 원글을 작성한 사람에 대해 비판할 거리는 또 하나 존재한다. 그의 레퍼런스는 움베르토 에코의 ‘파시즘’에 대한 글에 기초한다. 그는 움베르토 에코의 글을 임의로 해석하여 나무위키를 ‘파시즘 단체’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하는 ‘파시즘’이, 일개 인터넷 커뮤니티에 논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인가? 더 나아가서, ‘파시즘’은 무엇인가? 로버트 팩스턴이라는 컬럼비아 대학 역사학 교수는 자신의 역작 <파시즘> 1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부 학자들은 흔하게 사용되는 파시즘이라는 용어의 부적절함에 크게 분노하며, 파시즘에는 어떤 유용한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고 말한다’. 팩스턴은 비록 이 견해에 반대하지만, 파시즘이라는 말이 명확한 정의와 뜻 없이 사용되며 그냥 ‘나빠 보이는 것’에 무엇이든 파시즘의 딱지를 붙이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관점을 견지하며 ‘파시즘’이라는 ‘분류’를 폐기하자는 사람들의 이유는 단지 파시즘은 혐오감을 표현하기 위한 수사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 게시물을 작성한 H모 또한 팩스턴이 인용한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지적 허영심으로, 팩스턴 교수가 말하는 파시즘의 ‘정서적 기초’는 다음과 같다.

  • 어떤 정서적 해결책도 소용없는 불가항력적인 위기감
  • 개인의 어떤 권리보다 집단에 대한 의무를 우선시해야 하며, 개인은 집단에 복종해야 한다는 집단 우월주의
  • 자신의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 내부의 적이건 외부의 적이건 모든 적에 대해 법률적, 도덕적으로 한계까 없이 어떤 행동도 정당화하는 정서
  •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계급 갈등, 외부의 영향으로 공동체가 몰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가능하다면 동의를 구하겠지만 필요할 경우 배제적 폭력이라도 동원해, 공동체를 더 깨끗하게 더 긴밀하게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
  • (예외 없이 남성인) 타고난 지도자의 권위의 요청, 공동체의 운명을 단독으로 구현할 국가 지도자에 대한 갈망
  • 지도자의 본능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 집단의 성공에 바쳐지는 폭력의 아름다움과 의지의 위력을 찬미하는 태도
  • 선택된 민족이 인간의 법이건 신의 법이건 어떠한 형태의 법적 제약을 받지 않고 다른 민족을 지배할 권리. 사회진화론적 투쟁 속에서 공동체의 용맹성이라는 유일한 기준으로 결정되는 권리

(이하 출처: 로버트 팩스턴 저, 손명회, 최희영 공역,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108~109p, 교양인, 2004)

즉, 파시즘의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서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나무위키는 여기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본 글의 부분적 저자로서 나무위키는 이 정서 중에 어떠한 것도 명확히 해당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마지막 항을 예로 들자. 나무위키가 어떤 사이트들을 ‘지배하고’ 서로 ‘투쟁하고 있다’고 생각되는가? 아무리 나무위키가 병신의 지경을 뚫고 있다고 해도 그들이 ‘레벤스라움’을 찾아 팽창하려고 있지는 않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것은. 팩스턴 교수의 파시즘 정의는 구체적인 정당, 정부, 정치체제를 겨냥한 것이므로 그런 것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 나무위키는 파시즘의 정의에 부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문학계 일부에서는 ‘미시 파시즘’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적이고 작은 차원에서에서도 ‘파시즘’이 존재한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공저한 <반오이디푸스>(간혹 안티-오이디푸스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기도 한다.)의 영문판 서문에 대해 미셸 푸코가 적은 ‘미시적 파시즘’은 이것이다. 인하대 철학과 교수 김진석의 저서에서 재인용하였다.

“우리 모두 안에 있고,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일상적 행위를 떠나지 않는 파시즘. 파시즘, 우리가 권력을 사랑하게 하는 파시즘,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를 부려먹는 바로 그것을 욕망하게 파는 파시즘”

(이하 출처: 김진석,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191~192p, 개마고원, 2009)

다소 모호하다. 이렇게 따지면 파시즘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이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장은 바로 앞 문장에 가까울 것이다. 즉 그들의 파시즘은 ‘특정한 병신들의 양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내재한 권력과 폭력을 추구하는 본성 말이다. 그러나 이 정의를 인용하더라도 나무위키를 파시즘이라고 몰아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정의를 그가 받아들이는 순간 자기 자신도 파시즘을 내재하고 있다는 똑같은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다른 방면으로 지적하자면, 원저자가 움베르토 에코를 인용하여 파시즘을 논하려고 한 시점에서도 문제를 지적 가능하다. 고 움베르토 에코 교수는 세계적인 석학이고 다양한 방면에서 박식하였으나(필자는 아직도 그의 <장미의 이름>을 읽으며 전율한다) 애석하게도 그의 전공은 ‘기호학’이다.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언어 사용을 다루는 한 갈래인 것이다. 그러나 파시즘은 기본적으로는 역사학이나 사회학, 사회철학이 다루어야 할 영역이다.(물론 그 사회의 구성원인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므로, 그 언어를 논하는 기호학이 아예 연관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기호학 그 자체만으로 파시즘을 분석할 순 없다)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태클을 걸자면 움베르토 에코는 파시즘 분야의 비전문가이며 그의 글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지식인의 한 의견과 개인적 기고문’으로 다뤄야지 그 자체를 파시즘의 근거로 사용하려면 지적인 불성실성이다. 물론 원저자는 불성실했다기 보다는 뭔지 몰랐다 하는 게 옳겠다.

 

여하간, 그의 ‘나무위키 파시즘’설은 그가 비난하는 나무위키의 ‘뇌피셜’과 똑같은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옛날 게시판 등이 완전히 사라졌으나) 리그베다 위키의 대혼란과 나무위키의 탄생 극초창기 당시 일부 유저군들이 우려했던 것은 리그베다 위키가 악마화되는 과정에서 리그베다 위키에서 ‘마땅히 차단해야 했던’ 진짜 트롤마저도 리그베다 위키의 악명을 핑계로 ‘나는 억울하게 차단당한 깨어있는 사람’ 핑계를 하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원 글의 저자 또한 나무위키의 악명에 편승하여 아무말을 늘어놓는, 필자가 나무위키 초창기때 우려했던 그런 트롤 부류와 다르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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