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날짜 : 2019/08/07

위키가 특정 이념, 이데올로기, 가치관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상 – 즉 위키가 하나의 POV를 선언하지 아니한 이상 – ‘중립성’을 표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특정한 이념/이데올로기/가치관을 표명하지 않은 위키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용자에게 원천적으로 열려 있음을 표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각기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면 각자의 이념 차이 때문에 충돌하고 부딛치는 지점이 생겨나는데, 이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말빨이 좋은 사람의 ‘승리’,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의 ‘승리’로 이어지게 되며, 이는 특정 이념의 우세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되면 결국 그 위키는 ‘특정 이념이 우세한 곳’이 되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위키에서 버티지 못하거나, 아예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에게 열린 위키’가 아니게 된다.

그래서 ‘특정 이념을 표방하지 않는 위키’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선제적으로 ‘분쟁이 일어나고 그 승자 위주로 편향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립성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그 중 하나는 위키백과의 ‘중립적 관점Neutral Point of View, NPOV’ 정책이다. 이는 위키백과가 어떠한 가치판단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한다. 흔히들 사람들이 ‘위키백과의 모든 서술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나온 것만 적는다’고 믿는데, 단순히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는 내용은 나무위키에도 ‘생각보다는’ 흔하다. 그러나 위키백과 서술의 진정한 특징은 ‘가치판단 않음’이다. 즉 위키백과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나온 내용 적는 것이 허용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기반하더라도 위키백과에서는 출처에 기반한 ‘가치판단/예측/평가/논평’은 일체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대고 “특정인/단체는 이런 의견을 보였다”고 적는 것만이 허용될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위키백과의 용어에 따르면 ‘독자연구 금지‘ 정책(특정한 판단이나 결론을 내리지 말라)이지만, 출처에 기반하였더라도 그를 기반으로 도출된 판단이나 결론이 이미 하나의 관점Point of View이기 때문에, 결국은 중립적 관점에서 어긋나는 것이 된다.

그와 반대되는 것은 ‘다중 관점Multiple Point of View, MPOV’이다. NPOV가 모든 가치 판단을 금하여 중립을 지킨다면, MPOV는 모든 가치 판단을 허용하여 중립을 지키는게 목표이다. 즉,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치판단과 평가가 가능하다면, 그것들 모두를 쓰게 허용해줌으로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말할 자유를 줬으니 치우치지 않았다” 고 선언하는 것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위키 중에서 MPOV를 채택하고 위키는 ‘구스위키’와 ‘디시위키’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럼 나무위키는요?”라고 물어볼 것에 답하자면, 엔하위키에서 시작해 리그베다위키, 그리고 나무위키까지는 중립성 정책이 딱히 없다. 그냥 분쟁이 일어나면 토론이라는 이름의 싸움판을 벌이고, ‘거기서 이긴 주장’이 해당 문서의 정설로 쓰여지는 것이다. 다음 토론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따라서 ‘엔하계 위키’는 문서마다 제각각의 POV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위키백과는 NPOV이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MPOV-유사’적인 서술이 나오는 것은 가능하다. 가령 특정한 정치적/학문적 논제에 대해서 실시간으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면, 이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풀pool’ 자체에서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아무리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서술한다고 하더라도 그들 중 한 쪽의 의견만을 서술한다면 이 상황을 ‘중립적인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경우 위키백과식 NPOV 서술에서는 다른 의견을 표출하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나온 정보를 모두 기재해야 하며, 이 경우 ‘MPOV-유사’적인 서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키백과에서는 이에 대해서 단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 상황을 전달하는 것에 그쳐야지, 그 중 하나를 옹호하거나 반박할 수는 없다. 그러한 점에서 MPOV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논제, 정책을 오해하거나 악용해서,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의 말도 위키백과의 중립성을 위해서 공평하게 기재해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중의 한 사례가 여기에 있다. 창조과학회라는 유사과학 단체는 수천년 전에 기록된 어떤 종교 경전의 파피루스와 양피지에 적힌 대로 세계가 생겨났다고 믿으며, 이것을 과학책에서 ‘공평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우기는 단체이다. 이 단체는 과학계에서는 이미 패배한 지 오래인데, 과학계에서 이길 수가 없으니 대중을 선동하겠다는 전략을 채택, 적극적으로 학생, 기독교인, 기타 대중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진화론과 논쟁이 진행 중인 이론을 구축했는데, 학계에서 부당하게 우리를 억압하고 있다고 우기는 것이다. 물론 여기는 반창조과학 블로그가 아니니 창조과학회와 같은 창조설자들을 반박하는 그런 내용은 리처드 도킨스나 기타 대중과학서의 영역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 여하간 이 블로그는 진화생물학이 과학계의 정설임을 인정하며, 본 블로그의 주제는 ‘위키의 정책’이니 정책에 대한 글로 돌아가도록 하자.

비단 창조설자들 뿐일까? 5.18이 북한군이 잠입한 폭동사건이라는 주장, 백신을 맞으면 아이를 자폐증 환자로 만든다는 주장 등의 여러 사례가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여전히 논쟁의 한 축’이라고 주장하며 따라서 자신들의 주장은 위키에 ‘중립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며, 그 일환으로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긍정론’이 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1의 답이 2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3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 사이의 중립을 지킨다고 2.5라는 답을 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견고한 기성 주장을 ‘하나의 극단’으로 만들고, 저것도 하나의 극단이고 우리의 주장도 하나의 극단이니 이것들 사이에서 ‘가운데 길로 가자’고 주장하는데,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도로에 억지로 환상의 길을 옆에다 그어놓고, 따라서 환상일 수밖에 없는 ‘중립이라는 가운데 길’을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무위키의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도 원론적으로는 동일한데, 페미니즘을 하나의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라고 억지로 정의하고, ‘남녀를 모두 동등하게 대하는 젠더 이퀄리즘’이라는 환상적 중립을 설정한 것이다. 이것은 한 위키가 창조과학과 같은 ‘날조된 논쟁’에 빠졌을 때 그에 대한 환상적 중립을 추구했을 때의 가장 최악의 형태를 보여준다.

반면, 창조과학, 5.18 폭동설, 백신 반대운동, 환단고기 같은 명백한 유사과학이나 유사역사학 등 가짜학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주장의 견고함이 ‘대립’되는 상대편보다 약하며 이를 지지하는 사람의 수도 소수설일 경우가 존재한다. 위키백과에서는 이에 대해서 서술을 금지하지는 않으나, 그 비중을 공정하게 재현하라고 말한다. 소수설일 경우 위키백과에서도 그것이 일부만 지지하는 소수 견해임을 명시해야 하며, 이에 대한 서술을 오도하여 다수설로 보여질 수 있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유사학문의 추종자들은 위키에서 논쟁 후 부정된 다음에 무턱대고 특정 위키가 편향되었다고 어디 가서 하소연하지를 말자, 높은 확률로 그건 위키의 편향이 아니라 당신의 편향일 것이다.


본 글에서 말하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해당 위키에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규정된 리스트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