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날짜 : 2019/08/07

모든 위키가 가질 만한 고민이 하나 있다. ‘무엇을 적고 무엇을 적지 말아야 할 것인가’란 질문에는 어느 위키라 하더라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위키의 정책이나 위키커뮤니티의 성향에 따라 스펙트럼적으로 ‘적합한 글’과 ‘적합하지 않은 글’은 존재한다. 굉장히 애매한 개념이지만 이 선호도에 가까운 것은 실존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

2016년 중순 나무위키와 트위터 등지에서 일어난 ‘준큰풍 사건’이란 일이 있다. 대전에 사는 어떤 사람 2명이 즐긴다는 놀이 코스(?)와 관련된 글이 나무위키에 올라왔고 당연히 문서는 삭제처리가 되었다. 그리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위키에서 편집 버튼을 누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키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저걸 올린 사람이 문서를 ‘순수한’ 목적으로 올렸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흐름으로 트위터 등지에서 조리돌림되고 수정전쟁과 뒤이은 위키 전역에 대한 반달리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토론에서 ‘준큰풍을 삭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느냐’라고 하며 흔히 말하는 ‘등재 기준’이라고 하는 주제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당연히 우리가 ‘준큰풍’과 ‘준큰풍 사건’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거의 대부분의 위키는 이것에 대해서 기록하는 것을 저장공간 낭비로 취급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는 것은 중요하다.

글 서두에서 말했듯이 모든 위키는 정책과 위키커뮤니티에 의해 적합한 글과 적합하지 않은 글의 종류를 가지고 있다. 좋은 정책이라면 위키커뮤니티의 인식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잘 반영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의 위키는 한계점이 있다. 준큰풍 사건은 그 틈새를 파고든 일종의 ‘트롤 행위’ 였다.

우선 이전에는 ‘저명성’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위키백과의 정책이나 논의에서 따온 말인데, 어느 특정한 위키에 실리려면 최소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준으로 적합하냐 부적합하냐를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위키 특성에 따라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유저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문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위키들은 ‘등재 기준’ 내지는 ‘적합한 문서 기준’ 등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의 주제가 올라오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정책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한두가지의 요소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분야별로, 문서별로 각각의 기준을 정해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다만 이것에 너무 경도되면 기준이 위키를 역으로 압박하는 경우가 생긴다. 위키의 성장 가능성이 정책에 의해 제약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준을 풀다 보면 위키커뮤니티가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문서들이 생기게 되며 (이 과정은 자연스럽다. 트롤뿐만이 아니라 일정 수준에서는 유저들과 기준이 다른 사람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삭제 토론과 기준에 관한 논쟁으로 위키가 시끌벅적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준을 널널하게 만들어 놓고 위키커뮤니티나 관리자의 판단으로 운영하는 위키도 많다. 다만 이런 위키들은 규모가 일정 이상으로 커지면 관리자나 유저들이 위키를 검토하는 소요가 많아져서 운영에 필요한 자원이 증가하게 된다.

여기서 결론적으로 두 가지 확실한 것이 나온다. 첫 번째는 “등재기준은 만능이 아니며 위키러들의 오만한 발상이 아니다”. ‘위대한 이 위키에는 이 정도는 되어야 작성 가능하다’란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단지 위키커뮤니티의 적합/부적합에 대한 선호를 바탕으로 만든 실용적인 기준일 뿐이다. 두 번째는 “기준에는 허점이 있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자는 배척받는다” 이다. 체제에 대한 시험은 어느 위키에도 환영받지 못한다.  위키에서 편집을 한다는 것은 위키커뮤니티에 소속된다는 것이다. 창의성은 환영받지만 최소한 커뮤니티의 방향과 맞아야 환영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