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날짜 : 2019/06/13

이제까지 우리는 블록체인 위키에 대한 글들을 써왔다. 그 글들은 대부분 현재 블록체인 위키의 구조적인 약점들을 잘 집어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비판’에는 능숙하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어떤것에 대한 이상을 만들어 내는덴 매우 불편한 감이 없지 않다.

필자의 지인이 꿈꾸는 위키는 ‘탈 중앙적 위키’이다. 물론, 그 지인도 블록체인이란 마법의 단어는 쓰지 않는다. 그냥 ‘탈 중앙적인 위키’라고만 정의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이상적인’ 탈중앙적 위키가 과연 만들어질수 있는가를 한번 찾아보고자 한다. 한번 심심해서 해본 생각이 몇개 있으며, 또한 들은것도 몇개 있다. 일단 니트페어리에서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당연히 모든 사이트(위키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는 실현가능한 목표지, 실제로 적용되는 법이 아니다.

탈 중앙화 위키내용을 보다가, 필자는 이게 은근 ‘학회’와 더불어 ‘학술 공동체’와 얼핏 비슷하다는 점을 느꼈다. ‘학술 공동체’를 ‘위키 커뮤니티’로, ‘학회’를 현실의 위키로 보는 것이다. 또한 학회에서 나오는 논문들은 ‘문서’로 보고 말이다. 실제로 ‘학술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안에서 학술 공동체의 대표자를 뽑지만, 어디나 내막을 보면 나오듯이 어느 한 특정 저자 혹은 특정 패거리들이 자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학회란 것도 말이 학회지, 실상은 ‘커뮤니티의 동문회’와 같은 실상으로 이런 커뮤니티의 동문회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적 영역(Public Square)까지 올라가게 된다. 즉, 영국 살롱의 뉴튼이 프로이센의 라이프니츠가 각기 발명한 미분적학을 뉴튼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라이프니츠를 까내렸다는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튼, 시간이 아주 흐르고 결론은 뉴튼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독자적으로 발견한거라 하지만, 지금이나 그 당시나 학회는 해당 커뮤니티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이론적인 공동체 구실을 해줬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학회지 혹은 저널(Journel)이 있다. 혹자는 논문이라고 한다만, 사실 논문이란건 자기 생각이 맞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걸 고상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많은 논문의 참조들은 사실 자신의 말들을 뒷받침해주고, 또한 남의 말들을 반박할수 있게 해준다. 또한 논문 디펜스때는 학술 공동체를 위해 다른 이들을 보고 비판을 하라고 한다. 이 같은 비판은 위키에서 보자면 문서 등재기준을 ‘강제적’으로 맞춰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당하는 이는 괴롭지만, 학술 공동체는 이 정도 되는 저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경우, 학술 공동체에서 기여하는 건 어찌보면 학술 공동체라는 거대한 위키에서 기여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물론 이 학술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경우, 위키처럼 천대받지 않이한다. 오히려, 높은 수준의 학술 공동체(간단하게 KCI, 국제적으론 Science Citation Index 혹은 Social Science Citation Index 점수)의 경우 쌩판 모르는 대학교에서 나와도 내가 이런 학회에 글을 냈소 하면 인정해준다. 즉, 국제적인 대우를 받게 해준다. 그렇게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는 저널이고, 논문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이런 취급을 받을수 있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으며, 그리고 또한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 그리고 또한 사회의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프라인 이면서 탈중앙적인 위키’를 이뤄냈다. 물론, 역사적 정보의 흐름으로 볼때, 이런 흐름은 국가의 정책적인 흐름이 이끌어온 것도 있다. 그렇지만, 돌아가는 걸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위키 커뮤니티’와 ‘위키’와 같이 떨어진다. 이게 우연인지, 혹은 같은 정보를 다루는 공동체로서 정보의 수렴진화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유심하게 볼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