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날짜 : 2019/08/20

정치(政治, politics)에 대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학문적인 정의는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이 내린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다. – 위키백과, “정치 문서

니트페어리는 일전에 ‘위키에서의 분쟁에 관하여’ 시리즈의 제 1편(?)으로 ‘종교 분쟁‘을 언급한 바 있다. 해당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종교 분쟁보다도 더욱 큰 분쟁은 정치적인 분쟁이다. 종교는 ‘탈주술화와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단순히 ‘개인의 취미’ 또는 ‘세속과 무관한 어떤 것’ 취급을 받기 시작하였지만, 정치는 고대에나 현대에나 언제나 ‘현존권력’의 문제였기에 지금도 그 정치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시사분야 중 하나이다.

대다수의 커뮤니티들은 정치 문제를 극혐한다. 그래서 정치,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하면 국내 정치 이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아예 금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정치 자체를 아동포르노, 마약 거래, 테러 모의와 같은 불경하고 끔찍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비록 ‘정치질’이라는 한국의 속어에서, 정치가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지는 드러나지만 말이다). 정치 그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정치라는 주제를 허용했을 경우에 이용자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가장 정상적이라 보이는 형태’에서도 각 정치세력들 간의 사이는 좋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모두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지만 현존권력(즉 정부에서의 집권)의 문제에서는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집권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정치세력들은 본질적으로는 협력자라기보다는 경쟁자일 수밖에 없으며(의원내각제라 하더라도, 연립정권의 형태로 집권권력이 다수의 정당이 되는 것 뿐이지, 경쟁체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치세력의 직접 참여자 – 정치인 – 이 아니더라도 그 정치세력의 지지자들 – 정당의 일반 당원들과 당 지지자들 – 도 상대 정치세력에 대해서 적대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정치’를 목적으로 개설된 것은 아니기에 ‘정치 이야기만 하지 않으면 서로 잘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싸움박질하고 사이가 나빠진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정치떡밥을 언급하지 마라’는 이유로, 모든 정치사안에 대해서 침묵적 중립을 유지한다. 위키커뮤니티의 경우에도 리그베다 위키가 이 노선을 채택한 것에 가까웠다. 엔젤하이로 위키 –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정치인 개개인에 대해서 아예 작성을 금했으며, 동명이인이 있을 경우에만 ‘아무개라는 이름을 가진 정치인이 있다’라는 것만 언급할 수 있었다. 1다만 리그베다 위키 자체가 아예 정치성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정당 문서 등에 대해서는 서술이 가능했고 위키러들의 의견이 달릴 수 있었으며, 또 리그베다 위키의 ‘위키커뮤니티로서의 공간’인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에는 시사 게시판이 있어서 그곳에서는 정치 현안에 대해 얼마든지 논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논의의 결과물은 ‘위키커뮤니티 바깥’인 리그베다 위키에 표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취하고 있는 ‘침묵적 중립’은 가장 값싼 방법이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어떤 의견도 표출되지 않고, 의견이 없기에 분쟁이 없고, 분쟁이 없기에 중립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모든 입을 닫아버림으로서 싸움을 피하는 법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리그베다 위키식 ‘동결처리’ 남용은 곧 위키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를 한정시킴으로서, 위키러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반면 위키백과에서는 애초부터 정치 이슈에 대한 규정에 대하여 특별한 제한이 없었으며, 초창기 나무위키는 리그베다 위키의 데이터베이스를 도적질포크한 다음 namu의 선언으로2리그베다 위키의 모든 ‘동결처리'(문서보호 조치)의 해제는 결코 나무위키 ‘위키커뮤니티의 총의’가 아니었다. 단지 사이트의 주인이었던 namu의 일방적 선언에 불과했을 뿐이다. 모든 동결처리 및 작성금지를 해제해 버리며 정치 문제도 서술 가능의 영역으로 들여오는 등으로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두 위키의 경우에는 정치 이슈를 금하지 않는다. 이곳에는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에 대한 문서가 있으며 해당 위키에서 규정하는 내에서 모든 사항을 쓸 수 있다. 약력, 행적 등 모든 것 말이다. 이는 ‘위키러의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는 자유롭지만, 다른 커뮤니티에서 ‘정치 이야기 금지’를 함으로서 막으려고 했던 것의 문제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바로 ‘유저들간의 정치적 분쟁’의 문제이다.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의대로 정치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면, 그의 말에서 방점을 찍어야 할 단어가 두 개 있다. 즉 ‘가치’와 ‘권위’이다. 가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이며, 권위는 ‘누가 힘을 가졌는지’이다. 그리고 가치와 권위가 ‘국가’ 라는 엄청난 단위를 조정하게 되면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정치적 분쟁이 거셀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게임, 애니메이션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기껏해봐야 개인간의 의견 대립과 인터넷 말싸움 정도로 끝날 일이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그들 중에서 ‘의견이 받아들여진’ 측이 누구냐에 따라, 누군가의 삶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정치에 민감하며, 사실은 민감해야 한다. 다만 정치에 민감한 것과, 정치 주제로 위키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정치적 문제를 대응하는 나무위키와 위키백과의 방법은 원론적 차원에서는 거의 같다.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통하여, 토론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출처를 강제하지 않는 나무위키’ 에서도 정치적 문서의 경우에는 상당히 많은 출처, 주로 언론 보도의 형식으로 달려 있다. 그러나 위키백과나 나무위키가 아무리 언론보도라는 ‘신뢰성 있는 근거’로 지정된 자료에 근거해 작성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바로 그 신뢰성 있는 근거로 규정된 언론사 자체가 정파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과학이나 학문도 정치적으로 엄정한 중립은 아니겠다마는, 기본적으로 ‘신뢰성 있는 근거 자료’ 자체에서부터 이데올로기적 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근거에서 내리는 ‘가치판단’ 대로 사안을 판단하다 보면 결코 중립성 있는 평가가 아니다. 간간히 떠도는 말 중에 ‘신문을 두 개 읽으라, 서로 반대되는 입장에서’ 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커지는 이유는 ‘정치성에 매몰된 유저들’의 적극성 때문이다. 이 유저들은 처음부터 투철한 이념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위키를 ‘특정한 정파를 공격하거나 / 옹호하거나’ 의 목적으로 이용한다. 나무위키나 위키백과에서 정치 관련 문서에 자주 나타나는 유저들의 기여 내역을 보면 그 유저의 사상은 바로 보일 수 있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유저들은 양 쪽 모두에 그런대로 좋은 말을 하거나 양비론을 펼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특정 정당, 특정 세력 정치인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그들의 치부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기사들을 집중적으로 출처로 댄다. 그리고 그 언론들은 노골적인 정파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매우 골치아프다. 왜냐면 그들의 서술은 나무위키나 위키백과나, 대부분 조선/중앙/동아/한겨레/경향 등의 ‘제도권 언론’ 등이라서 그 자체로 ‘신뢰할 수 있는 근거’라고 규정 단위에서 보호받고 있기에 이들의 서술 자체를 무효로 할 수 없다. 신뢰할 수 있는 자료에서 나올 수 있는 서술을 어떻게 부인한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반박을 시도하는 유저들의 경우에는 그나마 반대쪽 성향의 언론 등에서 조금 다르게 평가하는 기사 등을 가져오는 것이 전부이다. 결국 대다수의 결론은 ‘옹호론과 비판론의 존치’라는 애매모호한 결과,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정치적인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이 이미 위키에 반영되고 토론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존치’되는 것으로 여겨지기에 그들은 ‘승리’ 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말하면 합리적인 유저들, 그리고 합리적인 운영진들이 이 모든 사항을 조율하여 ‘대화와 타협’으로 끝나는 ‘유토피아’적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유저들도 합리적이지 않고, 운영진도 합리적이지 않으며, 대화와 타협은 실은 말싸움과 키보드로 하는 배틀로얄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 결국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여타의 수많은 커뮤니티의 해법들, ‘침묵적 중립’이 ‘현실적 관점에서 생각보다 합리적이다’라는 비극적 결론이 쉽게 나올 수 있다. 시간과 감정은 어디까지나 소모되기만 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키커뮤니티의 나머지 유저들’은 이러한 ‘정치적 유저’들에 대해서 극단성을 적절히 제어 할 책임 / 필요성이 있다. 그것은, 적어도 자신들이 열린 위키를 지향한다면3진보위키 또는 우남위키와 같은 위키는 애초에 ‘특정한 정치사상을 대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이런 곳은 설립 취지 자체가 정치적 의도가 있으니 예외로 한다., 위키의 개방성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을 제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들의 관점이 적절하게 토론 등의 방법으로 조율되지  않는다면 위키의 정치 서술들은 한 가지 POV,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관점으로만 도배될 것이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유저들은 그 위키 자체를 거부하고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제어’ 또는 ‘조율’이라는 것은 또 다른 논점을 시사한다. 이들을 제어하는 것은 누구인가? 나무위키의 경우에는 상당수의 정치적 토론들(대부분 누구를 극우, 극좌로 지칭할 수 있냐는 대단히 노골적인 토론)이 umanle S.R.L.의 강제결론도출에 의해 그가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결정된 전력이 있다. 이렇게 되면 사안은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 문제까지 번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