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날짜 : 2019/08/23

‘위키’라는 말의 어원은, 위키백과에 따르면 하와이어 ‘위키위키’, ‘빠르게’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위키 사이트의 정보는 ‘빠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우를’ 수는 없다. 대부분의 위키에서, 정말로 모든 것을 쓰도록 허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고 앞으로 언급할 4가지 이유는 가장 흔한 경우에 속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포함된다.

  • 위키 스스로가 특정한 주제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

즉, 위키 자체가 ‘우리는 XX에 대해서 다루는 곳입니다’라는 모토로 설립되었고, 그 주제 XX에 대한 문서만을 쓰기로 결정한 경우이다.  가령 불바피디아라는 사이트는 오직 포켓몬스터 시리즈만을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위키에서는 포켓몬과 관련된 것이라면 ‘미싱노’ 같은 버그까지도 일일히 나타나는 현상 하나하나를 적을 만큼 방대하지만, 포켓몬이 아닌 것을 어떤 유저가 적으려고 했다간 곧 삭제당하고 말 것이다. 여기에서 ‘기동전사 건담’에 대해 쓸 수 있을까? 없다. 아마 불바피디아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가는 ‘건담 다루는 위키로 가십시오, 여기는 포켓몬에 대해서만 씁니다’ 라고 할 테니까 말이다.

위키피디아의 설립자였던 지미 웨일스가 운영하고 있는 호스팅 사이트 ‘팬덤‘(구 명칭 위키아) 에는 수많은 위키들이 입주해 있다. 그리고 이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하는 위키들은 대부분 소규모 위키이다. 그 이유는 이 위키들이 특정 주제만을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이외의 것을 서술하지 않기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이런 위키들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그것에 대해서만 쓰기로’ 처음부터 결정하였으며 오직 그것만을 위한 위키를 만드는 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 위키가 특정 관점만을 서술하기로 한정한 경우

본 글에서는 ‘위키에 쓸 수 없는 것’을, ‘특정 문서’에 한하지 않는다. 특정 문서의 일부분일 수도 있고 여러 문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서술들’도 니트페어리의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술들’에 속하는 것 중에는 ‘관점’도 존재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관점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서술한다. 위키에서의 관점은, ‘그 문서를 서술함에 있어서 서술자, 더 넓게는 위키커뮤니티의 입장, 생각, 관점’등을 아우르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위키의 관점, 즉 POV에 대해서는 니트페어리의 이전 글에서 다룬 바 있으니 참조하라.

그리고 어떤 위키들은 주제에 있어서는 광범위하지만, 그 대상들을 다루는 관점에 있어서는 하나의 관점을 취하기로 명기한 경우가 있다. 한국어 위키를 예시로 들면 페미위키진보위키, 영어권 위키의 경우에는 래셔널위키를 예시로 들 수 있다. 문서의 수가 많지 않지만 페미위키나 진보위키는, ‘나무위키’처럼 게임이든, 애니메이션이든, 만화든, 드라마든, 무엇에 대해서든 주제를 가리지 않음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위키가 나무위키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페미위키의 경우에는 ‘페미니스트의 관점 (FPOV) ‘을 설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므로 모든 서술이 FPOV를 따르는 것이 위키 설립자-위키커뮤니티 차원에서 공식 선언되었으며, 진보위키의 경우에는 ‘좌파-진보적 관점’을 대변해야 한다. 래셔널위키 경우에는 ‘이성적-합리주의적-리버럴적’인 관점을 설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위키에서는, 그 관점에 반하는 서술은 불가능하다. 가령 페미위키에서는, 여성주의를 반대하는 서술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런 ‘특정 POV의 위키’에서 그들의 POV의 주장에 반대되는 입장에 대한 ‘소개’ 및 ‘인용’은 가능하다. 그러나 결코 문서에서 보여주는 관점이 ‘위키의 공식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관점에서 중립적으로 보겠다’는 것마저도 하나의 관점이 된다. NPOV 또한 하나의 관점이 되는 것이며, 위키백과 또한 ‘특정 관점만을 서술하기로 한정한 위키’에 속한다.

  • 위키가 특정한 법적 제약에 구속되어 있는 경우

인터넷은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지언정, ‘무법의 공간’은 아니다. 다른 모든 사이트와 마찬가지로 위키 사이트의 서버가 위치한 나라의 법, 그리고 사이트 주인이 속한 국가의 법에 위키는 종속될 수밖에 없으며, 법률에 의해 특정한 서술들이 금지될 수 있다.  가령 나무위키의 경우에는 ‘국적성이 불명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국제적 공통 법률에 따라 ‘마약 밀매, 폭발물 및 무기의 거래와 제조법, 아동 포르노’에 대한 서술을 엄금하고 있으며, 약간이나마 한국적인 요소를 띄고 있는 제약으로서 ‘주체사상의 찬양 금지’를 명문화하였다.

그리고 법에서 명백하게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정법에 의해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경우 알아서 자진검열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니트페어리의 이전 글 ‘위키에서의 분쟁에 대해서 – 정치‘에서 미처 적지 못한 내용이 있다. 엔젤하이로 위키-리그베다 위키에서 정치적 서술(대통령,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에 대한 서술)을 금지한 것은 논쟁을 금지하는 것으로 평화를 얻으려는 ‘침묵적 중립’의 요소도 있지만, (소문에 따르면) 더 큰 이유는 엔젤하이로 위키의 운영자가 모 정치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기 때문이다. 엔젤하이로 위키에 어떤 정치인에 대해 서술되어 있었고, 그 정치인이 명예훼손으로 엔젤하이로 위키 측을 고소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재판으로 넘어가는 것은 면했지만, 십년감수한 엔젤하이로 위키의 운영자는 ‘앞으로 우리 위키에서는 정치인에 대해서 쓰지 마라, 니가 변호사를 고용하고 대신 책임져술 수 있는게 아니라면!’이라는 규정을 만든 것이다. 디시위키에서 현직 정치인에 대해서 원천적으로 작성금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비단 정치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명예훼손은 대한민국 사법체계 내에서 강력한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 명예훼손에 저촉되는 것을 명백한 ‘한국 위키’들은 두려워한다. 권리자가 무슨 이유에서건 ‘나는 위키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선언하면 영원히 위키에서 그 사람(또는 법인)에 대해 침묵시켜 버리는 작성금지 제도는 명예훼손 때문에 생겨났다.

  • 위키가 자체적으로 ‘등재 기준’ 규정을 만든 경우

앞의 세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되지 않더라도, 위키 내에서 자체적으로 규정을 통해서 ‘이 대상은 우리 위키에서 서술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삭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권 위키 중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하는 나무위키와 위키백과는 매우 방대한 등재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나무위키의 등재 기준 / 위키백과의 등재 기준

두 위키의 등재 기준 모두 상당히 방대해서 라이트 유저들이나 위키커뮤니티 외부의 독자가 보기에는 ‘뭐 저런것들을 일일히 규정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등재 기준이라는 것은 일정부분 그 필요성도 인정되기는 한다. 그저 이름없는 한국 중학생들의 이야기일 뿐인 ‘준큰풍’은 ‘x무위키를 엿먹인다’라는 목적 하에 외부 개입이 일어나  다수의 반달이 일어난 것을 빼고 보면, 거의 대다수의 유저들이 ‘저것은 위키에 적힐 것이 아니다’라고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름없는 일반인’ 내지는 그 정도에 수렴하는 ‘어느 사이트의 회원 A’ 등을 일일히 적어댄다면 3번에서 언급된 명예훼손 및 사생활 침해의 문제까지 갈 수 있다. 그래서 등재 기준은 필요악이다.

하지만 나무위키, 위키백과 식 등재 기준을 정할 때는 유의할 것이 있다. 등재 기준에 의해서 어떤 문서를 ‘이 사이트에 적히기에 부적절한 대상’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지극히 인위적인 개념이다.(물론, 1번부터 3번까지도 인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적지 말아야 할 것’으로 어떤 내용들을 쳐낼 때는 그것이 왜 우리 위키에 적혀서는 안 되는가, 그것이 적힘으로서 우리 위키에 무엇이 해로운가에 대해서 위키커뮤니티의 충분한 숙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무위키의 경우에는 단지 특정 유저들이 꼴보기 싫은 문서를 쫓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편집지침을 독점하여 등재 기준을 제 마음대로 올려버렸으며, 최근에는 분쟁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유튜브의 야인시대 2차 창작’ 주제 전체를 사이트 운영자들이 논의 없이 삭제해버리는 일마저도 벌어졌다. (사실 위키에서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북한이나 가까이는 나무위키을 보고 오라.) 나무위키의 운영자를 포함한 유저들이 제 마음대로 ‘입법가 놀이’를 하면서 이것저것 다 짤라버렸을 때. 그들은 이 문서가 ‘반드시 없어야 하는 이유’를 숙고하기는 했을까? 단지 ‘삭제를 위한 삭제’를 벌인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