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날짜 : 2020/01/23

위키는 기본적으로 커뮤니티이고, 커뮤니티는 나름의 의사결정 과정이 존재한다. 단순히 친구들과 오늘 점심을 뭘 먹을지 결정하는 데도 결정 방법이 필요한 것처럼 자연히 그것보다는 큰 규모의 커뮤니티인 위키는 나름의 의사결정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분쟁은 의사결정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일정한 설계 없이 자연스럽게 성장한 위키의 의사결정 과정은 보통 두 가지로 수렴한다. 첫 번째는 위키를 개설한 개인 (혹은 집단)이 전권을 가지는 체제이다. 대부분의 개인 사이트들도 이와 같은 의사결정 과정을 가지고 있으며, 사이트의 주인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반면에 위키 유저가 중심이 된 집단에서는 유저들의 토론에 의한 만장일치로 의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케이스는 유저의 생각을 곧바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하지만 대부분의 위키는 필연적으로 이 두 가지 극단을 채택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서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구조는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감당하기 어렵고,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의 뒷감당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예를 들어 블로그에 쓴 글은 블로그 주인이 책임이 진다. 당연히 결정을 블로그 주인이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든 판단을 개인이 했을 때, 그리고 잘못된 판단으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때 다른 유저들은 결정을 내린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위키에서 이런 방식을 채택하기는 힘들다.  만장일치제도 큰 단점을 가지기는 매한가지이다. 일단 그 특성상 의사결정의 속도가 매우 느리고, 악의적 사용자가 개입했을 때 필리버스터가 벌어져 의사결정 자체가 멈추기도 한다. 그리고 논쟁의 여지가 있을만한(모험적이지만 효과적인, 내지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결정이 통과되기 힘들다. 이는 장기적으로 커뮤니티의 붕괴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위키는 이 두 가지 극단이 대변하는 가치를 적당한 선에서 섞어서 운영된다. 유저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을 중요시할 것인가? (만장일치) 아니면 의사결정의 명확성과 속도를 중요시할 것인가? (전권결정) 이 두 가지 가치는 상호모순적인 면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공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을 하나만 채택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층적으로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차적으로는 논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구성하지만 안될 때는 투표로 진입하거나 하는 방법이다. 많은 위키가 복합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채택한다. 대부분의 분쟁 상황에서 논의를 거쳐서 분쟁이 해결되는 것을 우선 목표로 하고, 이것이 실패할 경우에 다른 방법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우선 가장 전권결정적인 면을 크게 반영한 체제는 “최종적 결정자”이다. 사이트 소유자가(내지는 권한을 위임받은 주체) 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항상 모든 상황에서 개입하지는 않는 체제이다. 대표적으로 리그베다 위키와 현재의 나무위키가 이런 체제를 가진다. 이 체제 하에서는 개입한다고 생각한 시점에서는 사이트 소유자가 개입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다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다. 결과적으로 위의 전권결정 체제에서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감당하기 어렵다”라는 점을 완화하고, 어느 정도의 결정책임을 다른 유저에게 떠넘길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의 책임이 돌아오기 때문에 개입 정도와 사이트 소유자의 운영능력에 상당수 의존한다. 만약에 결정적인 순간에 실책을 저지른다면 짧게는 유저 이탈으로부터 크게는 공개적인 반발과 커뮤니티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서 2015년의 리그베다 위키 사건을 들 수 있다.

이것보다는 완화된 형태가 “위원회 구조”이다. 유저 가운데서 선출되거나 영입된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논의해서 결정하는 구조이다. 운영진 내부의 논의를 하는 나무위키의 운영회의나, 별도의 선발된 인원들이 진행하는 위키백과의 중재위원회를 들 수 있다. 이 체제는 기본적으로 위원회의 구성을 어떻게 할지와 선출된 위원들의 역량과 다양성에 의존한다. 기본적으로 대의구조인 만큼 얼마나 유저들의 의사를 반영할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위원들이 유저를 설득하는 것을 실패하거나 위원들이 커뮤니티의 신뢰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쉽게 결정이 부정되거나 분쟁이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만장일치보다는 의사결정의 속도가 빠르고 개인의 독선적인 판단이 어느 정도 걸러질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엘리트주의의 모순을 불러올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어떤 위키는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투표는 어느 의견이 더 유저의 지지를 많이 받는지를 가리는 경쟁이다. 투표를 통해 결정된 의견은 결정책임이 유저 전체에 있기 때문에 책임소재가 희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동원 등의 부정행위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아주 강한 안정성을 가진다. 하지만 의결 정족수에 따라 여러 특성을 가지는데 90:10과 같이 극적인 경우에는 문제가 생길 여지가 적다. 하지만 51:49라면 소수자가 실질적으로 소수자가 아닌 상황을 불러오기 때문에 의사결정의 안정성을 신뢰하기 힘들다. 최악의 경우에는 커뮤니티가 붕괴할 여지가 있다. 다만 이 체제에서 의결권은 상당히 중요할 수 있다. 의결권을 일부에게 보장하거나,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의결권일 경우에는 추가적인 반발을 감안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런 의사결정 과정 중 결정의 최종적인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만장일치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납득 가능한 결정을 할 수 있는지와 결정과정의 합리성이 이를 완화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명확한 점은 애매한 의사결정 과정은 추가적인 분쟁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위키백과의 “총의” 개념이 있는데, 만장일치가 아님이라고 적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의 의사를 모아야 할지를 정하지 않은 이런 구조는 실질적으로는 상당수 만장일치와 같이 작용한다. 또한 의사결정의 종결조건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반대하는 사람이 전혀 출현하지 않을 때까지 토론이 이어지며, 필리버스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만장일치제보다 안 좋은 면이 있는데, 어떤 상황에 있어서 반대자가 있는 상태에서 결정이 강행될 경우 발생한 반발을 설득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분쟁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커뮤니티의 불안정성을 불러온다.

결국은 어떤 의사결정을 선택할 지는 각 위키마다 다르다.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이 명확해야만, 그리고 유저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야만 분쟁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명확하지 않은 의사결정은 필리버스터와 혼란을 불러오고, 유저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 의사결정은 장기적으로 반발을 불러온다. (당장 나무위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자.) 이는 역설적으로 의사결정 이전의 커뮤니티의 숙의과정이 중요함을 나타낸다. 중재와 조정 등의 과정으로 사전에 분쟁이 해결된다면 굳이 소수자의 반발을 가져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