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날짜 : 2021/01/17

오늘은 굉장히 당연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모든 일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 지극하고도 자명한 문장이 의미하는 것을 생각보다 사람들이 체감하지 못한다. 이것은 위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위키에서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할 때는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기 마련인데 이것은 개인적으로 소모하는 비용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알찬 글을 혼자서 적었다면 보통 그 사람은 꽤나 많은 비용을 소비했을 것이다. 여기서 생각보다 일이 커져서 많은 사람이 참여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것 역시 많은 비용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참여할수록 그에 비례해서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의 비용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번아웃을 불러오게 되고, 위키질은 더 이상 즐거운 일이 아니게 된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과몰입’하지 않게 주의하거나, 활동기와 휴식기를 가지는 패턴이 자주 나타난다. 따라서 이런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보다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되기 떄문에 위키 측면에서 이런 비용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예전의 리그베다 위키와 초창기의 나무위키는 되돌리기 기능이 없거나, 틀 인수 기능이 부족해서 직접 복사해서 틀을 따로 만들어야 하거나 하는 일이 빈번했다. 또한 무엇 하나를 고치면 위키 전체에서 보일 때마다 바꿔줘야 하는 일도 생겼다. 따라서 위키러들은 문서의 내용에 신경쓰기보다는 위키문법을 고친다거나, 유지보수에 시간을 쏟는 경우가 빈번했다. (물론 유지보수는 아주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 언젠가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위키는 대부분 이런 작업을 봇으로 대체하거나 기능을 개발하기 때문에 상당수 유지보수 비용이 감소했다. (반면에 여러 고급 기능의 관리와 모니터링의 책임을 떠안은 운영자에게로 비용이 집중되는 측면을 지닌다. 이것도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한 데에 어그로를 끌어서 반달이 몰려와 복구를 해야 한다거나 위키 전체에서 문체반정이 일어나서 대량의 편집이 필요한다거나, 위키 전체에 저작권 문제가 제기된다거나 해서 편집을 하는 일이 발생할 때 위키러는 공짜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사안을 논의할 떄 뭔가 굉장히 번거로운 의견을 내고  맞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만 옳은 것이지, 그 후 실현이 힘들기 때문에 좋은 의견이 될 수 없다. 마치 다 좋은데 비싸서 살 수 없는 물건과 같은 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전에 소통비용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단순히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도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를 커뮤니티 전체적인 측면에서 확대해보자. 위키커뮤니티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논쟁이 발생한다. 문서의 구조나 사용하는 단어, 특정한 것을 ‘사실’로 인식하는 범위, 어떤 사건에 대한 관점과 같은 문서의 내용에서부터 위키러의 권리, 운영자의 지위, 책임의 분배, 누군가를 차단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와 같은 수많은 사안에서 논쟁이 발생한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위키는 문서 뒤에 숨겨진 거대한 콜로세움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법과 소시지는 비슷한 데가 있다. 만드는 과정은 안 보는 게 좋다는 점에서.” 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위키 토론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말을 꺼낼 만큼 상당히 시시한 주제에서부터 논쟁이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저 생각대로 단순히 ‘안 보기’를 선택해야 하는가? (그렇게 되면 이 문제로 넘어간다.)

여기서 ‘아니오’란 답을 했고, 위에 말한 비용 문제를 이해한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비용 소모를 없애기 위해 논쟁의 양을 줄여야 하는가? 사람들이 싸움질할 시간에 공통된 이해를 기반으로 문서를 편집한다면 더 나은 결과물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이 있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리 논쟁을 거쳐 규정을 만들거나, 운영자가 적극적으로 중재하도록 만들거나, 토론에 참가하는 사람의 수를 줄임으로서(토론 참여를 불편하게 만든다.) 위키러를 논쟁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나름의 해법을 내놓았다. 대체적으로 초창기 이후 나무위키가 이 관점에 따라 운영되었고 그 결과 비잔티움식 관료제와 같은 결말을 맞게 되었다. 더 이전의 사례를 살펴보면 운영자에게 많은 역할을 떠넘긴 리그베다 위키는 2015년 초에 일어난 사건으로 마법같이 무너졌다.

대체 왜 이런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인가? 이 사이트들은 분쟁으로 인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나름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무적인 문제를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비용을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에서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의 비용’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일반적인 위키커뮤니티에서는 토론 등에서 의견을 표명하는 걸로 의사소통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 공간 외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관측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공간에서의 논쟁과 갈등을 제거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쉽게 갈등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재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즉각적으로 표출되지 못하니 “그럼 두고 보자”는 것이다. 이런 것이 누적되면 그래서 참다 못해 판을 엎어버리는 사건이 생기거나 번아웃에 빠져서 위키를 나가버리는 일이 생긴다. 당장 내야 할 지불을 미루기 위해 신용카드를 긁고, 계속 미루기 위해 리볼빙을 하다가 파산을 맞이하는 셈이다.

그러면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한 첫걸음이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표면적 비용과 잠재적 비용이라고 하자.) 위키커뮤니티에서, 혹은 운영자가, 또는 어떤 집단이 영향력 있는 결정을 내릴 떄는 어떤 것이든 간에 비용이 필요하다. 이것은 위키커뮤니티의 일반적인 인식과 차이가 있을수록 더욱 커진다. 그리고 이런 비용이 위키커뮤니티가 감당하지 못할만큼 커진다면 작게는 심각한 논쟁이 일어나는 것부터 크게는 위키커뮤니티가 엎어지는 것과 같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신기하게도 이것은 위키의 운영 형태와 관계가 있는데 다수의 의사결정이 반영되는 형태는 (논쟁으로 인해) 표면적 비용이 큰 반면 결정의 정당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기 때문에 잠재적 비용은 상당히 적다. 반면에 대부분의 결정을 혼자 하는 독재에 가까운 형태일수록 표면적 비용이 적은 반면에 잠재적 비용이 커진다.  그래서 논쟁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엘리트주의적 해법을 취하는 것이 결론적으로 비용을 줄이지 못하는 결론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용을 미리 지불하거나 비용을 다른 형태로 지불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서 대표자에 대한 일반적인 신뢰가 확보된다면 대표자가 자신의 생각과 일부 다른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 사람이라면 어련히 생각했겠지’ 하고 갈등요소를 회피할 수 있다. 이것이 비용을 신뢰로 지불하는 방법이다. 만약에 사전에 논의를 거쳐서 최대한 많은 사안에 대해 위키커뮤니티가 공통된 인식을 가지게 한다면 논의를 하는 데에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는 비용을 미리 지불한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갈등으로 인한 비용보다는 논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싸다.

결론적으로 비용 절감과 분쟁 예방을 위해서는 위키커뮤니티가 최대한 많은 사안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을 가지게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활발한 소통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 환경을 통해 커뮤니티의 신뢰를 받는 운영자가 나온다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커뮤니티가 공통된 이해를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어떤 결정을 관철할 때의 갈등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