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날짜 : 2021/11/29

우리들이 위키에서 글을 쓸 때 되도록이면 논쟁거리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실제의 위키커뮤니티에서는 갖가지 이유로 논쟁이 생겨난다. 논쟁이 발생할 만한 주제의 경우에는 어느 수준까지는 커뮤니티 내에서 우세한 의견에 따라 서술 방향이 정해지지만 한쪽 의견이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거나, 위키의 정책 상 중립성을 추구할 경우 관점이 중립화될 필요가 생겨난다. 하지만 중립화라는 것이 어느 수준까지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각자마다, 커뮤니티마다 한계치가 다르고, 모든 사람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자기가 납득하는 방향으로 글을 쓰고 싶어하기 때문에 서술은 (어디가 중심점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중립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오늘 우리는 이런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위키러는 커뮤니티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 한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서술한다. (많은 경우 토론으로 정해질) 제약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주제를 지우거나 고칠 수 없을 때 그 위키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더 작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서로 반대되는 부분을 분리한다고 해도 한쪽 의견의 크기가 4천 바이트고, 다른 의견의 크기가 200바이트가 되는 등 분량 차이가 크게 난다면 아무리 형식상 분리했다고 하더라도 읽는 사람들은 그것을 중립으로 해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장기간 동안 해당 문서를 자연스러운 상태로 관찰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위키커뮤니티에서의 우세한 의견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물론 미시적 관점에서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점을 볼 수 있다. 해당 주제가 마이너하거나, 문제점을 제기하는 쪽에서 이슈가 된 다음에 반론이 나올 시점이 되면 다른 이슈로 빠져나간다거나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위키커뮤니티 각 구성원의 생각보다는 이슈의 관심도가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의견을 분리하는 MPOV 모델에서 실질적인 중립이 실현되려면 위키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가능한 모든 주제에 대해 활발하게 편집하는 환경이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위키백과같이 정책적으로 중립을 요구한다고 해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다만 POV를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최근 언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따옴표 저널리즘’과 같은 방법론을 사용하게 될 뿐이다. 실제 사례에 비추어서 생각해 보자. 한 국제 회의를 다루는 문서에서 작성자는 정부나 정당 A를 비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위키백과에서는 직접적인 비판 서술에는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에 한 위키러는 단순한 방법을 채용한다. 정당 B가 정부나 정당 A에 대해서 비판한 성명이나 기사를 잔뜩 가져와서 그걸 기반으로 문서를 서술한다. 그리고 이와 대치되는 입장은 싣지 않거나 구색 정도로 남겨 둔다. 이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자신은 중립적인 서술자의 위치이며 자신의 서술은 누군가의 의견을 인용했을 뿐이라 주장할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립에서 꽤나 많이 멀어진 글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 편집에 문제를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누군가가 이렇게 주장했다는 “팩트”를 가져왔을 뿐이고, 그걸 기반으로 서술했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의견을 내세우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이를 반박하기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의 문제로 많은 경우 이런 서술은 그대로 남겨진다.

꼭 형식적으로 의견이 나뉘지 않더라도 중립적인 모양새를 취하면서 POV를 편향시킬 수도 있다. 이를테면 양비론을 취하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하게 일방의 귀책사유로 벌어지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게 일어나기 때문에 양비론은 두 가지 면에서 효과적이다. 첫 번째는 자신이 비판하고 싶은 대상에게는 강한 강도로 비판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상에게는 형식적인 비판 (이를테면 조금 더 신중하게 대처했어야 한다라던가)을 하게 되면 자신을 중립적인 관찰자로 포지셔닝하면서도 읽는 대상에게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신이 옹호하고 싶은 대상이 비판받을 상황에 놓였을 때, 상대방에게 주제를 돌려서 옹호하고 싶은 대상이 받을 비판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준다. 아예 프레임을 전환하는 것과 같은 방법도 있지만 양비론은 꽤나 적은 노력으로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모든 서술을 정상적으로 쓰면서도 상대에게는 자신이 하고 싶은 메세지를 전하는 방법도 있는데, “악의적 인용”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건에 대해서 서술한 다음 근거나 보충자료를 제시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대상으로 링크를 걸 것인가” 이다. 이를테면 “XX 사건이 일어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링크)” 식으로 글을 썼다고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건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담은 글을 읽어서 추가적인 정보를 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링크에서 나온 글이 “XX사건 X회사의 일방적인 잘못” 이란 제목의 기사를 넣거나, “X회사가 XX사건에서 반성해야 하는 N가지 이유”란 제목의 ‘사설’을 넣는다면 어떨까? 만약 XX사건이 X회사의 일방적인 잘못에서 빌어난 ‘사고’라면 이런 인용이 적절한 이유가 있겠지만 논쟁적인 주제거나, 별 문제가 없는 평범한 사건의 경우라면 이런 인용은 독자로 하여금 편집자가 의도한 방향대로 생각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이런 구성을 취하게 되면 자신은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서 중립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글을 끌고 가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위키에서 출처를 이용하는 방식뿐만이 아니라 그 출처 자체에서도 중립성을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위키백과의 ‘아버지’ 뻘 되는 지미 웨일스는 언론의 쇠퇴가 곧 위키백과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것은 언론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이었지만, 다른 지점에서의 위기도 있다. 위키백과는 출처로 사용 가능할 만큼 신뢰 가능한 언론을 규정하고 있으며, 나무위키에서도 원활한 토론을 목적으로 규정에서 ‘근거로 사용 가능한’ 언론 리스트를 규정한다. 문제는 출처를 기반으로 편향적인 독자연구(나무위키에서는 출처에 기반한 서술이면, 출처를 근거로 결론이나 논평을 내는 것을 ‘근거있는 탄탄한 서술’이라 보지만, 독자연구라는 말을 규정한 위키백과의 관점에서는 명백히 독자연구다) 를 하는 것 이전에 출처 자체에서 극도로 편파적인 발언을 하면, 1차 자료부터가 오염되어 문제가 발생한다. 오염된 1차 자료의 문제를 지적하는 발언은 대부분 제도권 언론만큼의 ‘권위’를 얻지 못해 오히려 독자연구라고 배제되거나, 운 좋게 다른 언론이나 권위있는 주체가 반박을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있는 서술 또한 ‘신뢰 가능한 언론에서 나왔다’는 명목으로 배제되지 않은 채 어물어물 MPOV 식으로 넘어가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면 형식상으로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중립적이지 않은 글이 나오게 된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방비하게 편집자의 의도에 노출되는 효과도 있겠지만(비판적 읽기는 당연히 필수적이다.) 만약 이런 방향성에 동의하지 않는 위키러들이 있다면 이런 편집은 교묘하게 싸움을 거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중립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가능한 한 적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을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가? 이 블로그에서 누누히 말하는 소리지만 이것에 대한 답도 역시 나이브하다. 우선적으로는 커뮤니티가 중립성이란 형식뿐만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위키러 스스로가 사건이나 자신의 가치관을 제3자적 관점에서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위키에 적힌 글 중에 위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글이 없는지를 수시로 점검하고, 발견한다면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중립화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위키에서는 객관화가 되지 않거나(트롤러가 아닌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한다.) 인식이 부족해서 형식에 집착하거나, 사람들이 문서를 잘 검토하지 않거나 수정으로 피드백되지 않아 예전 서술이 계속 유지되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많은 글들은 오늘도 중립을 회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