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날짜 : 2019/08/07

2017년 8월 1일, 도서출판 나무연필이라는 출판사에서 손희정이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여성학자(페미니즘 연구자) 손희정이 자신이 이전에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모은 묶음집이다.

이 책에서 저자 손희정은 그 뜨거운 감자인 나무위키에 대해서도 일부 의견을 남긴 바가 있다. 손희정은 자신의 저서에서 ‘나무위키는 리그베다 위키에서 일어난 대사건에서 사실상 분리되어 나온 사이트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나무위키를 단순히 소문으로만 접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별 거 아니라고 보겠지만, 나무위키가 언제 무슨 이유로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나무위키와 리그베다 위키 모두 ‘2015년의 리그베다 위키 사태’에 대해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손희정의 학술적 노고에 있어서는 본 사이트는 페미니즘 비평가가 아니므로 페미니즘적 관점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지만,  나무위키의 모 사용자가 거의 단독으로 기여하다시피 한 나무위키의 해당 저서에 대한 문서에서도 일부 지적하듯 나무위키 자체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완벽하지는 않고 지적할 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손희정은 나무위키가 ‘리그베다 위키로부터 결별’ 하는 과정에서 ‘탈권위주의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모토가 되었다고 <<페미니즘 리부트>>에서 적고 있다. 일베저장소와 나무위키가 탈권주의적 요소를 공유하고, 이것이 ‘반동적인 반지성주의’로 발전하여 이들이 생산하는 ‘재구성된 팩트 체크’가 혐오 정동을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저자가 리그베다 위키를 언급하는 것을 보아 그는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까지도 대강이나마 알고 있으며, 일반적인 수준에선 상당히 이해도가 높다. 앞에서 논했다시피 나무위키의 탄생 과정에 있어서도 여전히 줄거리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나 ‘탈권위주의적 공동체’ 지향에 있어서 이 부분은 정확히 알아가야 할 점이 있다.

이전에 작성한 글 ‘위키의 개방성과 폐쇄성에 대하여’ 에서 지적하였듯 나무위키는 처음에는 개방형 위키를 지향하였으나, 점차 폐쇄화되어가고 있으며, 바로 그것에 명백하게 못을 박은 것이 이용자의 자치적 선거로 선출되는 일명 ‘민선제’의 폐지와 사측의 직영체제 도입, 그리고 활동 내역이 존재하지 않는 비로그인 ip 기여자에 대한 편집권 제한 조치등이 그것이다. 이는 나무위키가 현재는 ‘탈권위주의적 공동체’ 라기보다는, ‘권위주의적인 회사체제와 그 회사의 이익에 봉사하는 이용자 집단’으로 변해버린지 오래라는 것이다. 물론 이 ‘논문 묶음’저서가 2017년 8월 1일에 출판되었으며(따라서 나무위키를 언급하는 대목은, 그 이전에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민선제의 폐지’는 그 후 약 2개월 뒤에 일어났다. 그러나 나무위키에 대해 잘 모르는 잠재적 ‘페미니스트’ 독자들은 ‘갱신된’ 정보에 대해서 잘 모르며, 이들은 대부분(본 사이트의 억측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나무위키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고 구체적인 작동 방식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므로 여전히 나무위키가 탈권위주의적 공동체인 것으로 오해를 살 여지가 있으므로 이 부분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민선제가 폐지되기 이전에도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요소는 존재하고 있었다. 2016년 5월 파라과이에 소재함을 내세운 Umanle S.R.L.이라는 미지의 법인이 나무위키를 ‘인수’하여 운영권을 ‘넘겨받은’ 이후, 민선제는 2017년 9월까지 유지되었으나 사측의 개입은 유의미하게 존재하였다. 위키백과나 리브레 위키의 경우 ‘다중계정 검사'(이것이 무엇인지는 다음 게시물을 참조하자) 또한 일종의 ‘민선제’로 선출된 관리자가 하지만, 나무위키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Umanle S.R.L.이 관할하였다. 그러나 과거 글에서 나와있듯 나무위키의 운영사는 다중계정 검사에 대해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이는 충분히 의문을 살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선 운영진은 이에 항의하거나 개선을 촉구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으며, 설령 ‘다중이로 차단된’ 사람이 소명을 요청하더라도 ‘이는 회사가 처리한 것이니 우리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기각하는 일만을 하였다. 유저를 차단하는 것이 위키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이트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볼 때, 그 때도 이미 사측은 유의미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가 말한 일베저장소의 ‘탈권위주의’와 나무위키가 초창기에 보였던 ‘탈권위주의’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일베저장소는 디시인사이드의 ‘너도 병신 나도 병신‘ 문화를 수용해서 탈권위주의화 된 것이지만, 나무위키의 경우에는 민주주의적 운영 방식을 수립하려는 과정에서 탈권위주의를 지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베저장소는 탈권위주의가 ‘제한 없는 자유성’으로 이어지고, 나무위키는 ‘유저 자율적인 운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것이 위키에서 유저의 무제한적인 자유권 행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베저장소의 경우에는 ‘명백한 한국법 위반’ 이외에는 별 다른 터치가 없으며, 그래서 소위 말하는 ‘여성혐오 및 기타 혐오적 언사’들이 난무할 수 있는 것이다. 거의 무규범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위키의 경우에는 일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빡빡한 규칙이 존재하며,(사이트 운영에 관한 정책과 위키 컨텐츠에 관한 정책 모두!) 그 규칙은 신규 유저들이 이를 완전히 숙지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례로 나무위키에는 홀로코스트 부인론, 일본 제국, 이슬람 근본주의, 5.18 폭동설 에 대한 지지 내지는 찬성 표현을 할 수 없다. 일정한 글 작성 규범이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서 위키의 모든 글이 작성되고 검토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 규칙들이 완전히 이용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집행되었으나, 그 ‘입법의 자유’마저도 현재는 유저들에게 없다. 운영사측은 규칙을 무제한적으로, 유저의 동의 없이 바꿀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베가 ‘거의 무제한의 자유가 보장되는 야경국가’ 라면, 오히려 나무위키는 일종의 ‘권위주의적 법치국가’에 더욱 가깝다.

한편, 나무위키에 <<페미니즘 리부트>> 문서를 거의 단독으로 만들고 그에 대한 서평을 남긴 모 유저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고, 그 점에 있어서도 역시 지적의 코멘트를 남겨보려고 한다

또한, 나무위키가 팩트주의를 내세우며 혐오를 재생산한다면,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퀄리즘 문서가 토론이 처음 열린 지 얼마 못 가서 “날조” 로 판명되었던 이유는, 당시 페미위키 측 관계자였던 S모 이용자가 내세웠던 (혐오 정동이 없는) ‘팩트’ 를 접하고 나무위키 사용자들이 납득하고 자성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입맛에 맞는 팩트만을 재맥락화하는 반지성주의적인 팩트주의가 득세하는 곳이 나무위키라면, 어떻게 이퀄리즘에 대한 잘못된 진술이 교정될 수 있었을까? 애석한 것은, 페미니스트들은 이퀄리즘의 확산 과정에는 관심들이 많으면서, 그 정보가 정반대 방향으로 교정되는 과정에는 유독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나무위키는 이퀄리즘이라는 ‘재미와 혐오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서술을 포기하고,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이라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자기반성적 서술을 채택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이 사례로부터 어떤 희망을 발견하려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S모 유저가 이 기술을 남긴 맥락은 ‘페미니스트들이 나무위키에 대해 심층적인 이해 없이 외부의 피상적인 이해만으로 두들기고 있다’는 것이며, 그 점에 있어서는 모 유저의 기술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 예시는 매우 부적절하다. 우선,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의 과거 토론을 보면, 열린 토론만 수십개이고, 토론에 달린 레스의 수는 거의 수만 개에 달한다. 왜 이렇게 토론이 많이 열렸고, 또 레스가 수만 개에 달하는 것일까? 그것은, 당시 페미위키 운영자였던 ‘S모 이용자'(<<페미니즘 리부트>> 나무위키 문서를 만든 모 유저와는 전혀 아이디가 다르다)가 나무위키의 과거 ‘성 평등주의’ 문서가 날조라는 것을 제시하였지만, 그에 반대하는 격렬한 반대 토론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날조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는 ‘성 평등주의’ 문서를 완전히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으로 변경한 이후에도 여전히 ‘날조가 아니다, 오히려 페미나치들이 역날조를 시도한다’고 말하는 유저들이 빈번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 유저가 의도한 것은 ‘이 사건이 나무위키가 자체적인 오류 정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란 표현이었겠지만, 원저자의 주장은 ‘나무위키에 그러한 사상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고 그것이 편집으로 연결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무위키에 해당 문서를 만든 그 사용자는 그 페이지에 이와 같은 서술을 했었다.

더 본질적으로는, 나무위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화로 뒷받침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나무위키의 이용자라 함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의미하는가? 어쩌다 한 번씩 구글 검색을 통해 들어와서 열람을 하는 네티즌은 나무위키의 이용자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할까? 눈팅은 열심히 하지만 편집은 전혀 하지 않는다면? 편집은 열심히 하지만 늘 비-젠더적인 문서들에만 기여한다면? 나무위키에 폭넓게 기여하면서 위키 전체의 젠더 관련 논조에 영향을 끼치지만, 한편으로는 외부 커뮤니티와 여타 위키들에서는 나무위키에 비판적인 서술을 남긴다면 어떨까?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나무위키는 기여자(contributor)라는 개념을 새롭게 강조하기도 했으며, 그나마 이용자의 성비와 같은 최소한의 자료에 관해서도 아직 감조차 잡고 있지 못하다. 그저 막연히 남초 사이트로 상정되고, 실제로 페미니스트들도 그렇게 받아들이지만, 이는 나무위키라는 웹 페이지가 그 대표성에 있어서 남성으로만 과잉젠더화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손희정(2017)의 문헌에서 이 부분을 자의적으로라도 명확히 했다면 이는 경계 조건(boundary condition)을 갖는 제한적 설명으로서나마 유효할 수 있겠으나, 그런 진술은 확인되지 않는다.

여기서 나무위키의 문서 기여자 ‘s’는 <<페미니즘 리부트>>의 저자 손희정에게 ‘나무위키 이용자의 정의는 모호하다’고 역설하고 있고, 그 점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 논지를 상기한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을 언급하는 문단에 적용한다면, ‘나무위키 사용자들이 납득했고 자성했다’ 라는 서술마저도 성립할 수가 없다. ‘이용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데, 누가 반성하고 자성하였는가? 상기한 모 사용자는 본인 스스로가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 문서에 참여하였고 여러 ‘이퀄리즘(=성 평등주의) 옹호자’들과 맞서서 키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맥락에서는 ‘페미위키의 관계자’가 나타나자 모든 이용자들이 알아서 반성하고 과거의 과오를 반성한 것처럼 여겨지도록 오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이 문서는 나무위키의 운영진에 의해 높은 수준의 문서보호 조치가 걸려 있으며, 심지어는 Umanle S.R.L이 ‘이퀄리즘을 옹호하는 편집’을 시도하는 유저를 직접 차단하기도 하는 등, 이 문서에 대해서 구체적인 여론이 어떤지는 나무위키의 ‘날조 사건’ 문서만으로는 알 수 없다.

특히 나무위키는 제대로 된 ‘위키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문서 나름대로 이의가 있으면 문제를 제기하는 토론장이 있지만 이것은 일반적으로 여론 공유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편집 당사자들끼리의 논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게시판의 ‘그루터기’도 나무위키의 문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정책에 대한 글이나 일반적인 편집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오지 각각의 위키 문서에 대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키 유저들끼리 위키 문서에 대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고, 위키 유저들은 각각의 문서에서 동떨어져 편집과 논쟁을 반복한다. 일반적인 유저풀의 사상이 문서에 투영되는 형태로 어렴풋이 드러날 수 있지만 앞에서 말한 특성상 이것이 ‘여론’이라고 하기에는 위험하다. 어떠한 내용이 ‘나무위키의 여론’이라고 하기에는 이것이 여론인지를 검증할 수 있는 수단도,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위키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WMF 소속 위키나 리브레 위키와는 다른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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